떡볶이 왕자에게 졌어요
요즘은 누가 떡볶이 먹고 싶다고 하면 "저도요"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약간 자존심이 상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왜 먹는지 모르겠는 음식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찌개나라 떡볶이왕자' 시리즈 1탄을 보면 얼마나 떡볶이를 싫어했는지가 나온다.
그런 내가 떡볶이가 좋아진 이유는 극과 극은 결국 만난다고 하던데
싫다고 하면서도 자주 접하다 보니 좋아진 것 같다.
남편이 매일 떡볶이만 먹는 걸 보니 옮은 것 같기도 하다.
10년 전, 엄마가 한 명언이 하나 있다.
’절대란 절대 없다‘인데 지금 키우게 된 반려견을 처음 데려왔을 때 강아지는 절대 싫다고 반대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아지를 꼭 끌어안으며 뱉은 말이 “절대란 절대 없어~”였다.
그만큼 사람 입맛도 어떤 생각이나 의견도 절대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자존심이 상하고 살짝 부끄럽지만 요즘 그렇게 떡볶이가 맛있다.
모든 행동을 시작할 때 가장 넘기 힘든 문턱은 나 자신이 쌓아놓은 탑이다.
떡볶이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밥 먹고 얘기 나누는 시간이 중요한 나인데
맨날 혼자 떡볶이나 먹는 남편이 미우니 '저런 음식을 왜 먹어?'라며 쳐다도 보지 않게 된 것이다.
남편을 이해하려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입맛.
이 정도면 훈훈한 결말 같다.
하지만 우리는 어젯밤에도 목청을 높여가며 싸웠다.
단순히 떡볶이 vs 찌개의 싸움은 아니었다.
그 안에 깃든 본질적 문제가 있는데 내가 왜 남편과 함께 밥을 먹고 싶은지, 그걸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지였다.
금쪽상담소 엔조이커플 편을 보며 알아차렸다.
K-장녀로 꿋꿋이 살아온 아내(임라라)에게 남편이 ‘비빌언덕’이라고 말하는 오은영박사의 말에서 번뜩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행복이라는 말.
그게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자마자 위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게 자기는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준 사람이고, 비빌언덕, 안식처와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리고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별생각 없는데
라고 하는 남편.
당연히 이런 반응을 듣고 어떻게 안 싸울 수 있을까.
ISFP 남편은 바깥에만 나갔다 오면 기가 빨린다고 했다. 일하는 곳에서는 모든 리액션을 끌어모으다 보니 힘들었다고, 그래서 그렇게 얘기가 나가게 됐다고 했다.
퇴근하고 피곤할 만도 했을법한 상황에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만 챙긴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아직도 길이 멀어 보이지만 조금씩 뚜벅뚜벅 걸어나가다 보면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더 나은 우리가 되어있겠지.
그렇게 오늘도 희망을 가져본다.
싫을 것만 같던 떡볶이가 좋아진 것처럼 풀리지 않는 싸움도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그날이 오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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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개나라 떡볶이왕자 1탄 읽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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