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깨끗한 집에서 살길 바라
나는 정리를 잘하는 언니 사람이다.
정리 정돈에도 재능이라는 게 있다면 그 재능은 9개월 전에 발견했다.
바로, 정리를 못하는 동생을 통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정리를 못하겠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갔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렸을 때 자매라는 이유로 한 방을 썼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정리습관 하나 때문에 죽도록 머리채 잡고 싸웠던 역사가 있었다.
매일 치워도 어질러져 있는 우리의 방이었다.
제발 침범하지 말았으면 하는 내 책상까지도 정리해 놓은 상태가 몇 시간 가지 못했다. 바로 동생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정리정돈을 잘하고 민감한 언니 vs 보통 사람보다 정리정돈을 못하고 별 신경 안 쓰는 동생의 갈등은 날로 심각해졌다.
자매의 난을 말릴 방법이 없어서 엄마는 결국, 무리해서 각자 방을 줄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셨다.
이후 각자 결혼해서 전셋집에 살고 있는 우리 자매.
우연히도 집의 구조가 아주 똑같은 방 3개, 화장실 1개 구조의 구축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년에 내가 이사 와서 혼자 이삿짐 정리를 하고 깨끗하게 정리정돈 된 걸 보고 동생이 말했다.
“언니, 우리 집이랑 똑같은 구조 맞아?”하면서 갑자기 자기 집도 깨끗하게 정리해 달라는 거다.
극 P인 동생답게 본인 집정리에 꽂혀서 일을 추진했다.
바로 엄마랑 출동해서 옷방, 주방, 세탁실과 베란다, 화장실까지 대충 정리해 줬는데 아래 사진이 그때 찍은 애프터 중 거실 사진이다.
동생이랑 집 정리를 하면서 깨달았다.
진짜 정리를 못한다는 사실! 그런 사람이 어딨어라고 했지만 나의 제일 가까운 사람이었다는 사실!
쓰레기봉투를 들고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절부절못하는 동생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회사에서 몇 년째 신기록 경신에 전국 1등 TOP을 달리고 있는데 정리가 어려운가 의아했다.
온갖 영양제가 정수기 위를 넘어 싱크대까지 점령했길래 프랜차이즈 카페의 기프트세트로 나온 컵 두 개에 꽂아뒀다.
눈이 동그래져서는 이런 방법이 있는지 몰랐다고 외치는 동생이었다.
선물 받은 컵은 물 마시는 용도로만 쓸려고 했지, 이런 방법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내겐 어쩌면 당연한 정리 습관 중 하나였다.
정리 정돈을 잘하는 엄마 밑에서 컸기에 동생에게도 자연스러울 줄 알았다.
이렇게 우리는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를 오해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엄마는 무슨 일이든 쉽게 생각하는 장점이 있는데 나와 달리, 동생은 그 점을 쏙 빼닮았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 더 보완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더 인생의 긴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됐다.
정리정돈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어질러져 있는 집에서 생각도 마음도 어지럽지 않을지는 나의 오지랖인 것 같고,
그저 집이 깨끗하니 언제든 친구를 초대하는 언니를 부러워하는 해맑은 동생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하나.
정리를 못하는 동생 덕분에 나에겐 사소한 정리 습관이 누군가에겐 매우 쓸모 있고 도움 된다는 기쁨 하나.
오늘은 정리해 놓은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검사 겸, 정리 A/S도 해줄 겸 방문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과거에 비해서 조금 나아졌다는 게 의미 있었다.
다음 글부터는 재미있는 비포 & 애프터 사진과 같은 구조, 다른 자매의 집 구경을 가져오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