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배달시켜먹은 저녁밥상
평화롭게 쉬던 금요일 오후였다. 소변을 보는데 핏덩이가 나오다니 뭔가 느낌이 싸했다.
갈색 빨간색 손가락 반 마디쯤 되는 녀석.
생리할 때가 된 것도 아니었고 어떠한 전조증상도 없었다.
이럴 때는 직감이라고 하지. 바로 집 앞에 있는 산부인과를 갔다.
으으 높은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쫙 벌리고 질 초음파를 받는 그 구린 기분이란. 역시 예감은 적중했다.
자궁에 근종이 2개나 있네요
4cm 하나, 5cm 하나. 꽤 큰 크기여서 당장 개복하여 수술을 하자고 하는 의사.
쌍꺼풀 수술도 무서워서 여태까지 못하고 있는데 라섹도 무서워서 대충 보이는 대로 살고 있는데 배를 갈라서 여는 개복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저 의사 뭐야. 진료를 제대로 하긴 한 건지 화가 났다.
아니.. 너무 무서웠다.
7살 때 그네를 타다가 넘어져서 오른팔이 부러졌을 때 외과적인 수술한 것 말고는 몸에 칼을 대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어렸을 때라 내가 기억하는 내 일생 동안은 수술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센 척이 아니고 동시에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프면 귀찮다. 두려운 감정도 마주해야 하고 가족들에게 설명도 해야 하고 술도 못 마시니 스트레스 관리도 해야 하고. 감정 소모 에너지 소모가 눈앞에 보였다.
고작 30년 정도 살았는데 삶이 내게 알려주는 어떤 패턴 같은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뻔한 이야기지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는 인생은 롤러코스터라는 말. 나에게도 해당되었다.
어쩐지 요즘 너무 행복했었다. 남편이랑 밥 때문에 싸워도 가족들 다 건강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잘 지내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었다.
행복하면 불안했던 시절을 지나 곧 내리막길이 오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는 수준으로 발전한 나의 30대. 스스로 대견한 것도 잠시였다. 힘든 건 힘든 거였다.
남편은 서둘러 퇴근했고 침대에 걸터앉아 마주 보았다.
병원이 당장 수술을 권하는 게 마음에 걸리고 다른 곳 몇 군데를 더 가봐야겠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는데 잠깐만. 남편이 운다.
사슴 같은 눈망울에 가득히도 담기더니 눈물이 뚝 떨어져 남편의 뺨을 타고 흘렀다.
울고 싶었는데 누군가 나 대신 먼저 터트리면 기꺼이 져주듯 편하게 울게 된다.
누가 보면 죽을병이라도 걸린 사람들처럼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참 애틋하다 우리. 밥 때문에 싸우지 맙시다.
자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아프니까 이런 건 좋았다. 밥으로 지긋지긋하게 싸우던 것도 순식간에 사소한 일처럼 치부하게 되는 상황.
어쩜 이렇게 찌개가 좋을까. 자궁근종이 나트륨 과다로 생긴 병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찌개에 밥 한 술 뜨니 살 것 같았다.
수술만이 답이라고 하는 병원 말고 아는 언니에게 소개도 받아 두 군데를 더 예약했다.
D-DAY. 긴장되는 마음으로 남편과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나도 남편이기 이전에 남자와 산부인과를 가본 건 처음이었지만 남편의 인생에서도 처음 간 산부인과였다.
어색하지만 좋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어른이 된 것 같고 진짜 부부가 된 것 같달까.
한지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면 천천히 퍼지듯 잔잔하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병원을 만나서 수술 날짜도 금세 잡았다. 정확히는 시술이었다.
수술은 아무래도 무서워서 초음파로 빛을 한 데 모아 자궁 근종을 태우는 '하이푸 시술'이라는 것을 받기로 했다. 아빠가 실비 보험을 잘 들어놓아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 으이구 여기서 또 등장하는 애증의 아빠. 모처럼 고맙네.
돈도 굳었겠다 마음이 푹 놓였다. 남편도 긴장이 풀렸는지 안 하던 실수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두고 내린 핸드폰. 현대인에겐 거의 목숨만큼 소중한 전자기기. 허겁지겁 남편 핸드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었다.
휴. 천만다행으로 가져간 사람도 없었고 버스에 있다고 했다. 저희 진짜 착하게 살겠습니다.
바로 버스 차고지로 가면 되었는데 눈이 퀭하다. 초코라떼를 먹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카카오를 몸에 들이붓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늘어난 고무줄처럼 길었던 하루
핸드폰을 무사히 가져오는 동안 해가 저물었고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남편도 나도 고생한 긴 하루였다. 어김없이 보상심리가 발동하는 저녁이었다. 남편도 오늘만큼은 다이어트를 패스할 것 같아 물었다.
"나 고기가 먹고 싶은데 자기 저녁 먹을 거야?"
"음 모르겠어."
평소 같으면 습관처럼 먹어달라고 졸랐을지도 모르는데 남편과 다툴 힘도 없었다. 고기 한상차림으로 소고기 찌개와 육회까지 추가해서 거침없이 주문 버튼 꾹. 얼마 전 남동생이 준 위스키는 오늘 마시라고 가져왔나 보다, 가져오다가 깨지지 않은 것도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혼자 생각으로 중얼중얼. 버스는 한참을 달렸지만 룰루랄라 설레기만 했다.
옆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남편이 맛집 얘기를 꺼낸다. 맛집 탐방에 1도 관심 없는 사람이라 의아했다.
"자기야 요즘 000 떡볶이가 진짜 핫하대. 엄청 맛있대."
왜 저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일까. 답은 하나였다.
"이름만 들어도 맛있어 보인다. 거기 시키려구?"
"아니, 아니야."
오늘은 저기 떡볶이구나. 남편은 내게도 떡볶이에게도 한결 같이 충성이다. 그래, 각자의 힐링푸드를 시킵시다.
어느새 집에 도착했고 아늑하고 포근함에 몸도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술 마시기 딱 좋은 저녁이었다.
우리 부부가 달라졌어요
마침 배달이 왔다. 예상대로였다. 떡볶이가 나의 고기 한상차림과 같이 온 걸 보니 비슷한 시각에 시켰던 것 같다. 웃음을 삼키며 술을 꺼내왔다. 남편은 사이다 잔을 챙겨 오며 내가 좋아하는 예쁜 술잔도 잊지 않았다.
우린 짠을 했다.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토닥이며 서로의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함박웃음을 지으며 식사를 했다.
밥이 뭐라고 치열하게 싸웠던 날들을 견디다 보니 이런 밥상을 눈앞에 두고 웃고 있는 날이 왔다.
자궁 근종 덕분에 끈끈해져서였을까?
갈등은 사라진 게 아니라 가라앉아 있어서 언제든 우리 밥상을 덮칠 수 있다. 그렇지만 피식하며 웃음으로 넘기게 되는 순간이 시작되었고, 언젠가 웃음이 우리 부부의 갈등을 녹여 없애길 희망하게 되는 저녁이었다.
우리 부부가 달라졌다. 제대로 고백하자면 내가 달라졌다.
개과천선은 내가 못된 사람이었던 것 같으니 그거 말고 장족의 발전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같이 밥 먹어달라고 구걸하는 기분이 든다며 남편 앞에서 2박 3일 울던 꼬질했던 밤도
밥과 찌개, 반찬이어야만 제대로 된 식사라고 생각했던 얕은 이해심도
밥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를 나눠야만 진정한 부부라고 믿었던 기준도
모두 나 자신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며 웃을 수 있었다.
나랑 달라서 좋아한 이 남자를 사랑하려면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참 힘들었다.
떡볶이 팬들이 많아 함부로 말하지 못했지만 밀떡은 최악이고 쌀떡도 그다지 별로인 그놈의 떡볶이.
한국인은 밥심이고 한식이야말로 식사의 정석인데 무슨 자꾸 떡볶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니까 몸이 움직여졌다. 마음이 움직여지고 생각이 말랑해졌다.
며칠 후 조금 멀리 놀러 갔다 온 밤이었다.
교대로 운전했어도 장거리 운전은 고되고 피곤했다.
냉장고에 있던 체리를 꺼내 먹으며 둘 다 저녁을 안 먹고 잔다고 했다.
놀러 가서 많이 먹은 탓에 오늘 저녁은 그냥 넘기자고 하며 누웠다.
작심 1시간. 9시 30분쯤 되었나 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플을 켜고 배달 빠른 곳에 필터를 걸었다. 남편이 조금 더 빨라 보였다. 남편에게 시키라고 하고 메뉴는 묻지도 않았다.
"어차피 떡볶이 시킬 거지?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매콤한 걸로 시켜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