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옥탑방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
집이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는 그 옥탑방? 잠시 살다가 떠나는 그 자취방?
그곳에 신혼살림을 차린 것도 모자라 애정 가득히 글을 쓰겠다니.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집이라고 다 같은 집이 아니듯 옥탑방이라고 다 같은 옥탑방이 아니었다.
살기 전까지는 몰랐던 곳.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옥탑방은 나를 '살려준 집'이다.
살면서 죽고 싶었을 때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왕따를 당했던 겨울이었고,
한 번은 모든 게 무너져 내렸던 28살의 겨울이었다.
가족 때문에 일어설 수 있었던 한 번의 겨울이 지나고 가족 때문에 무너져 내렸던 겨울이 찾아왔다.
그때, 옥탑방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Korea)에서 살아가는 장녀를 'K-장녀'라고 하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는 게 우선이고, 동생을 잘 돌봐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20, 30대 여성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지칭할 때 쓰이는 말.
중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하며 엄마와 같이 살게 되었는데, 매일 수척해지는 엄마를 보며 불안했고 아끼는 동생들이 엇나갈까 겁이 났다. 내가 좋아서 한 장녀 역할이었다. 아니, 살려고 한 본능이었다.
엄마도 동생들도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을 무렵, 나를 돌보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다.
28살의 K-장녀는 집을 뛰쳐나왔다.
다니고 있던 회사가 시발점이 됐다.
말투는 '다나까'를 사용하고, 팀장은 사원인 내게 주임을 때리라고 시키던 군대 집단.
상무는 여직원을 성추행해서 방송에도 나왔지만 여직원은 그만두고 상무는 남아있던 그런 회사.
3년 가까이 그곳을 다니며 제정신 일리가 만무했고 회사원도, 장녀로서의 책임감도 다 그만두었다.
힘들었다고 말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눈물 한 방울 안나는 냉혈 인간인 줄 알았던 K-장녀.
말도 안 되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3년을 참아가며 말하지 못했던 건,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이 어렵다는 장녀 콤플렉스가 더해진 탓이었다.
고장 난 줄 알았던 눈물샘 완전 개방. 입이 트이듯 가족들에게 말했다.
"나 너무 힘들었어"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회사는 지점장을 비롯해 이사까지 만나서 한 판 제대로 하고 나왔다.
글을 칼로 사용해본 적이 있는가.
죽고 싶다고, 죽을 수도 있다고 원망 섞인 협박편지. 가족들의 마음에 칼을 꽂는 편지를 쓰고야 말았다.
아빠 때문이라고 했지만 아빠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말하고 싶었고
엄마 때문이라고 했지만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고
여동생 때문이라고 했지만 여동생을 부러워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편지들.
남동생에게 편지 배달을 부탁하고 집을 나왔다.
죽고 싶다는 건 살고 싶다는 간절함
죽음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집을 구하려고 나서니 체크리스트가 조금 특별해졌다.
가격, 위치, 기본적인 수압과 배수 등의 조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순위로 둔 3가지.
집주인이 세만 놓은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집'이어야 하고,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가 '오래' 살았던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곳이면 오래 머무는 거겠지 막연한 믿음.
바람이었는데 '집주인이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소망.
지금 집을 구한다면 다른 게 우선순위가 될 텐데 그땐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나 보다. 집보다는 온기를 찾아다녔던 나의 집 구하기 여정.
하루 6군데 집을 보러 다녔어도 성과가 없었는데 집도 인연이 있다는 말이 맞았다.
집 구하는 어플로 보게 된 흔한 유입경로. 한 번 보러만 가야지 했다가 계약하게 된 옥탑방이 그렇게 내 인생에 들어왔다.
재미있게도 내가 원한 3가지 조건에 맞아떨어졌다.
집주인은 3층 우리는 4층, 살고 있던 세입자는 3년째 거주 중이고 모든 게 만족스러운 집이지만 결혼하게 되며 어쩔 수 없이 집을 나가게 됐다고 아쉬워하는 중. 무엇보다 우리 집주인은 공인중개사가 보장한다는 '좋은 사람'
처음 보는 공인중개사가 추천하는 처음 보는 좋은 집주인.
애초부터 신뢰도가 의심되지만 마음에 든다는 건 생각보다 마음대로였다.
집이 고마워서 쓰는 이야기
쇠약해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다시 살아보겠다고 온 옥탑방은 옳았다.
잠이 잘 왔으며, 소화가 잘됐다.
파워 E(외향형)인 내가 집에만 있어도 기분이 좋았다. 마치 집이 포근히 안아주는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집주인은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다시 한번 살아보라고 말해주는 듯한 훌륭한 인품을 지니신 분들이었다.
차차 살아나기 시작했다. 점점 일어설 수 있었다.
머지않은 먼 훗날, 이 집에서 이사를 간다면 아파트를 고려하겠지.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나 여건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 그런 것들을 따지며 공부해야겠지.
하지만 여전히 그 겨울을 잊지 않고 있다.
가족과 일, 내 마음 모두 균형 있게 돌봐야 고꾸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야 비싼 집도 비싼 차도 의미가 있다는 것.
이 집에게 참 고맙다. 그래서 지금부터 옥탑방이 나를 살려준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