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비건이 아닙니다
햇수로 5년 전, 1년 동안 비건을 했고 그 일 년 동안 집들이를 열두 번은 더 했다.
비건을 시작하게 된 것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작했지만 돌이켜보니 한 가지 이유, 비워내고 싶어서였다. 몸과 마음에 낀 찌꺼기들을 걷어내고 싶어서였다.
몸에 독소가 가득 차다
잦은 회식과 매일 순댓국을 외치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고기가 물리다 못해 지겨웠다. 수많은 식사와 함께 따라붙던 언어폭력.
고기를 먹으면 괴롭히던 상사 생각이 불뚝불뚝 식탁에 올라와 나도 모르게 나이프를 찾게 되었다.
멈췄다. 다 접고 옥탑방으로 이사를 왔고 나 자신 스스로가 되려고만 노력했다.
평소 채소나 나물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나 자신에 집중했다. 친한 친구가 비건을 시작한 지 꽤 돼서 쉽게 따라가면 되는 길.
그렇게 나의 비건 라이프가 시작되었고 동시에 집들이도 시작되었다.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1년에 열두 번 집들이면, 한 달에 한 번 꼴로 했다는 건데 그걸 몽땅 비건식으로 차렸다고?
초대 손님 도합 20명 정도 중에 비건인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다.
고기 없는 집들이 밥상의 결과(성과라고 해야 하나)는 모두 매우 만족 별 5개였다.
"친구들아 거짓말 아니었지? 좋았잖아 우리"
내 집에 초대하니 최대한 나를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비건이라면서 손님들이 올 때마다 고기 요리를 하는 건 어쩐지 어폐가 있는 것 같았고, 어설프게 고기 맛을 흉내 내는 음식을 내놓는 것도 별로였다.
사실, 이 모든 건 다 핑계고 너덜너덜해진 나를 구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내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사랑받으면 나이프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비건식으로 집들이 음식을 차렸다.
와줘서 고맙고, 내 선택도 존중해줘서 고맙다는 마음만 상에 올렸다.
그 마음을 받아주듯 맛있게 음식을 먹어주는 내 친구들. 밥그릇 싹싹 긁더니 이내 뚝딱한다.
버섯 당근 밥, 가지찜, 키위 샐러드, 토마토 오이 무침, 야채만 볶은 꽃빵, 파프리카와 무순으로 만든 무쌈말이, 채소볶음, 바질 페스토를 올린 데친 두부. 직접 만든 뱅쇼로 한 잔 할 수 있는 집들이 4인상은 그렇게 순식간에 비워졌다.
비건은 삶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방식
고기를 차리고 안 차리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인생에 한 끼 정도는 나를 위해 비건식으로 먹어줄 수 있다는 친구들의 말이 나를 일으켰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라는 친구들의 품에 안겨 정화되고 있었다.
비워내려고 선택한 비건은 사랑으로 따뜻하게 채워졌다.
옥탑방 나의 공간도,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도 모두 내가 살려고 하는 발버둥인 걸 안다는 듯이 토닥이며 위로해주었던 사람들.
너라서 괜찮아
사람이 방전되면 충전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집 밖을 나오지 않으면 충전되는 사람, 훌쩍 여행을 다녀오면 충전되는 사람, 운동을 하면 충전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던 것을 집어던지고 옥탑방으로 이사를 온 그때의 나는 "너라서 다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충전이 되었다. 채식주의자이든 프루테리언이든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난 네 편이라고 말해주는 응원.
집들이 음식을 차리며 풀어놓았던 나의 마음은 점점 회복되어 제자리를 찾아갔다.
비건을 했던 1년이 지나고 왜 다시 고기를 먹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삶에 나를 맡기게 되었을 뿐.
지난 2년 간은 체질식을 했었다.
이 또한 나를 알아가는 하나의 방식이었고 유의미했던 시간이었다.
현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즉, 땡기는대로 다 먹는다.
언제 또 채식을 할지, 평생 안 할지 모르겠다.
그저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힘이 생긴 그 길목에 '비건'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을 뿐.
지금의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끌리는 동아줄을 잡아보라.
그것이 음식일지라도 꽤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