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것은 언제나 옳다
첫인상이 중요한 이유는 최초의 느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3초면 끝나는 승부. 길어도 90초 안에 결정 나는 '첫눈에 느껴지는 인상(印象)'에서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인중개사와 지금의 집을 보러 갔을 때였다.
대문을 열고 계단으로 3층을 올라 도어록을 여니 또 나오는 계단. 집이 오래된 것을 실감 나게 해 줄 만큼 낡은 나무계단이 펼쳐졌다. 이래서 옥탑방인가 싶었지만, 유럽여행 때 왠지 한 번 묵은듯한 숙소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집주인이 숨겨놓은 예쁜 다락방을 운 좋게 엿보는 기분이랄까?
문을 열자마자 헉. 이 집의 첫인상은 '무지개 물감'이었다.
강아지 이름은 그림이
살고 있던 분과 인사를 나눴고, 그 옆엔 귀여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주방부터 시선강탈. 노란색 냉장고와 하늘색 싱크대. 거실에는 분홍색이 가득한 벽.
뭐지 이 알록달록한 그림은?
세입자 분은 본인이 다 칠하고 꾸민 공간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디자인을 하신다고 했는데 이런 감각이라면 일을 되게 잘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제야 강아지 이름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때론 예쁜 것이 치료가 된다
번아웃, 에너지 방전 그런 것 따위로 불리는 인생의 암흑기에 난 그렇게 이 집을 만나게 되었다.
그림같이 예쁜 집. 바닥은 나무라서 예쁘고 벽은 분홍색이라 예쁜 집. 낡은 체리색 창문이 괜히 더 멋스러운 집. 이렇게 저렇게 꾸며도 실패 없이 예쁜 결과물을 보여주는 집에서 난 내 인생도 실패한 게 아니라고 위로받고 있었다.
집은 구석구석 예뻤고 자주 기분이 좋아졌다. 힘을 내는 방법 중에 보양식 먹기 말고 '예쁘게 살기'도 추가되었다.
이삿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냉장고 '색칠'이었다.
집들이 선물로 뭘 해줄까 묻는 동생들에게 페인트칠해주는 노동력을 선물해달라고 했다.
나보다 손도 빠르고 꼼꼼한 노동력 둘 덕분에 집은 더 예뻐졌다. 그렇게 우리 집의 시그니처 노란색 냉장고가 탄생했다.
집을 스케치북 삼아 놀이하듯 칠하고 오리고 잘라 붙이니 점차 집이 나를 닮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다채롭게 행복하고 싶다
빨간색처럼 강렬하고도 싶고, 노란색처럼 화사하고도 싶은 나의 인생.
초록색처럼 푸르기도 했다가 파란색처럼 차갑기도 하고, 보라색처럼 묘한 매력이 있는 그런 인생.
그런 인생을 꿈꿨지만 좌절한 나의 인생이었다.
'회사는 왜 진작 그만두지 못했을까'
'가족에겐 왜 그렇게 가혹한 상처를 줬을까'
한숨을 내쉬고 눈물이 흘러도 나아갈 수밖에 없는 나는, 재생만 되는 줄 알았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집에 기대어 쉬었다.
집이든 방이든 좋다.
내 공간을 내 마음대로 칠하고 꾸미다 보면 지금의 내가 어떤 색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매일 팔레트를 들지만 매번 같은 색을 칠하고 있다면, 색을 바꿔보자.
어느새 내가 원하는 색깔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우리 집의 초창기 모습들이다.
옥탑방은 계속 덧칠해지고 있다.
옥상의 초록색 방수 페인트도 장마가 온 뒤 벗겨져서 다시 색칠했고, 지우고 싶은 색은 다른 색으로 덮었다.
변하고 있는 우리 집은 변하고 있는 나만큼, 딱 그만큼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