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미니멀리스트도 있어요
이 글을 읽기 전에 하얀 배경에 물건 한두 개 있는 미니멀 라이프 사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나는 물건이 많지만 무려 5년 차 미니멀리스트이다.
내 인생 가장 물건이 적은 시기에 살고 있어서 만족하며,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삶의 가벼움' 또한 이루었다.
모두 행복하려고 산 물건입니다만
지금 사는 옥탑방으로 독립을 하기 전 내가 살던 본가는 52평 아파트였다.
우리 삼 남매의 방이 하나씩 있고, 안방 옆엔 엄마의 로망을 실현한 작은 소나무 방까지 방만 5개였다.
딸 둘에 아들 하나인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딸 둘인 나와 여동생이 방을 같이 썼고 내내 불만이었다.
엄마는 딸들의 한을 풀어주듯 큰맘 먹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행복함이 쌓여가는 만큼 물건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막상 독립을 하려고 하니 그 많은 물건들이 짐이 되었다.
버리려고 할 때마다 추억이 떠올랐고 향수에 젖어 끌어안기 일쑤였다.
한가득 버렸지만 여전히 많은 물건들. 내 추억들. 결국 이고 지고 옥탑방에 왔다.
아래 사진은 이삿짐의 지극히 일부이다.
욕심쟁이 었던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유
막상 짐을 풀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삶이 지쳐서 모든 걸 접고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온 건데 제자리 같았다.
'나를 막 대하는 회사에서 그까짓 경력 쌓겠다고 왜 버텼을까'
'가족들에게 진작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왜 혼자 끌어안았을까'
버릴 게 하나 없다고 가져온 짐들도, 나를 지키는 것보다 커리어를 쌓고 가족에게 힘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내겐 참 무거운 욕심이었던 걸 깨달았다.
물건들을 버리면 내 마음에도 공간이 생길 것 같았다. 비워내면 새롭게 출발할 용기가 날 것 같았다.
그게 많이 듣던 미니멀 라이프 아닌가? 한 번 해보자 하고 가볍게 시작했다.
그때부터 애정 하는 물건은 당근을 해서 팔았고, 안 팔리면 무료 나눔으로 해결했다.
쓰지도 않는데 내 '욕심'으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과감히 버렸다.
필요한 물건은 기존에 있는 물건으로 대체 가능한지 생각해보고 구매를 결정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머리카락을 줍는 돌돌이를 사는 대신 박스테이프를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박스테이프는 용도가 다양하지만 돌돌이는 한 가지로만 사용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 5년, 무엇이 바뀌었냐고요?
삶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돌아보니 버리지 못한 것도 습관이었다.
미니멀 라이프의 첫 시작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거라는 글을 봤었다.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인데, 효과 만점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52평 아파트에서 거실 하나 방 하나인 옥탑방으로 이사를 오니 억지로라도 짐을 줄이게 되었다.
공간을 넓게 쓰고 싶으면 더 줄여야 했고, 자연스럽게 미니멀 라이프가 되었던 것이다.
신기하게 물건을 비울수록 마음도 깨끗해졌고 뇌도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물건에서 점차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매번 잘하려는 욕심도, 끊어내지 못하고 있던 관계도 모두 가지치기.
지금도 썩은 잎이 보인다 싶으면 하나씩 잘라내며 미니멀하게 살고 있다.
비운 자리에는 어김없이 좋은 것이 채워졌고 삶은 더욱 윤택해졌다.
위의 사진에서 시계방향으로 왼쪽 투톤의 커튼 뒤가 그 많던 사계절 옷과 이불이다. 가운데 서랍장은 속옷과 양말, 모자와 화장품. 오른쪽엔 침대다.
이사 오기 전 52평 아파트에서는 온갖 수납장에 내 물건이 가득했는데 정말 미니멀 라이프 대성공이다.
생각해보면 아파트에서도 내 방은 하나였고 여기 옥탑방도 방은 하나다.
엄밀히 따지면 내 공간은 비슷한 크기였을텐데 내가 달라진 것이었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잘 살아보려고 채웠던 물건들이 잘 살아보려고 비우고 싶었던 물건들이 되었다.
분명 모두 노력한 내 인생이기에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이삿짐이 캐리어 두 개면 끝나는 미니멀리스트와 비교하면 난 완전 맥시멀리스트이다.
집에 수납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이 꽉 채워져 있는 동생의 눈에는 내가 엄청난 미니멀리스트이다.
이렇게 비교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미니멀 라이프도 마찬가지.
하지만 비교 대상은 ‘과거의 나’로만 둔다.
그래서 내 인생 가장 심플한 지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