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츄르!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기르는 게 꿈일 정도로 난 댕댕이파였다.
고양이는 괜히 나랑 안 맞는 느낌. 이상하게 싫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 정도의 일상이 흘러갈 무렵,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고양이 트라우마'가 시작되었다.
친구네 집 고양이 '야르'를 만나다
중학생 때였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내 인생 처음으로 가까이서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짙은 회색 바탕에 징그럽게 느껴지는 줄무늬. 삵 같기도 하고 호랑이 같기도 한 무늬였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내 곁에 와있다가 멀어져 있다가 순간이동을 반복하는 것 같은 소리 없는 움직임.
생김새도 조용한 발걸음도 모두 공포스러웠다.
도저히 한 공간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친구에게 무섭다고 말하고 친구 방 침대로 대피(?)를 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책장 맨 위칸에 동상처럼 앉아있는 게 아닌가! 으아아악.
그때부터였다. '야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네 집 고양이를 시작으로 고양이 트라우마 속에 살게 되었다.
가뜩이나 긴장해서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진 몸. 그 속에 있던 장기 하나하나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트라우마
그 이후로 고양이가 아니어도 작은 움직임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골목길 같은 곳을 걸을 때면 온몸에서 땀이 났고, 고양이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이미 심각했는데 트라우마가 더 심각해진 사건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야자가 끝나고 집으로 갈 무렵,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 다름 아닌 고양이 울음소리였다.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아기 울음소리라고 느껴졌고 또 한 번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소름이 끼쳤다.
"고양이"라고 발음도 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는 악화되었다. 누군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고양이를 없애만 준다면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한 번은 대학생이 되어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었는데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 고양이가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식탁에 있던 접시를 떨어뜨렸다. 와장창창 쨍그랑!
가게 안에 길냥이가 난입해 식사를 방해한 것은 엄연히 주인의 잘못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지만, 고양이는 우리의 친구일 뿐이라고만 하는 식당 지배인. 화나고 억울했지만 무서움이 가장 큰 감정이었다. 결국 접시 값을 물어주고 나오며 고양이를 더욱 미워하게만 되었다.
강아지를 통해 고양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시작하다
어렸을 때부터 소원을 이루고자 데려온 우리 집 반려견 '뿌꾸'
동생이 아는 언니네 집에서 가정 분양을 받았다. 내 인생 첫 반려견인데 이 녀석이 하는 행동이 정말 고양이 같더라는 말이다.
가장 큰 특징은 '순간이동'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 뿌꾸는 댕댕이처럼 뛰어다니는 일보다 매사에 살금살금 조심조심 움직인다. 견생 9년 차 중 사고 친 적은 쓰레기통을 뒤진 것이 가장 큰 말썽이고, 초인종 소리가 날 때 짖는 걸 보면 강아지였구나 끄덕이는 정도로 얌전+소심하다.
뿌꾸가 소리 없이 내 곁에 다가올 때면 고양이가 떠올랐고, 뿌꾸가 동상처럼 가만히 앉아있을 때면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강아지도 고양이도 똑같이 네 발 달린 동물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꽝꽝 언 땅이 녹듯 나의 고양이 트라우마는 그렇게 뿌꾸를 통해 처음으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뿌꾸를 사랑하는 만큼 녹는 속도에도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고양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고양이 굴에 들어가라
문제는 옥탑방에 이사오면서부터였다.
골목골목 온통 고양이. 심지어 옆집에는 고양이 밥을 주는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덕분에 1년 365일 고양이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고, 처음엔 한 두 마리였던 고양이가 지금은 6~8마리까지 늘어나 터를 잡게 되었다.
이웃집 할머니는 내 속도 모르고 마주치기만 하면 고양이 소식들을 전해주셨다. 쟤는 나라에서 중성화를 시켜주는 기간에 중성화 수술을 해서 한쪽 귀가 살짝 잘린 거고, 얼마 전에 어떤 고양이는 우리 집 1층 창고 앞에서 새끼를 낳아서 고양이가 4마리나 집에 있다는 둥 대문까지 열어젖히시며 보여주셨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정말 끔찍했다.
옥탑방은 내게 힐링 공간이었지만 대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나타나는 고양이들.
이제 막 고양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시작한 단계인데 내겐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그래도 극복하려면 고양이 사진 > 영상 > 실물 순서대로 자주 접하면 나아진다는 정보를 듣고 노력했다. 마주칠 기회가 없던 아파트에서 살던 때보다 극복하기 좋은 환경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고양이 트라우마 아내 vs 고양이 집사 남편
고양이는 주인을 선택한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내 남편 이야기일 줄이야.
남편은 나와 결혼하기 전 자취할 때 자꾸 길냥이 한 마리가 무릎에 올라와 앉고 졸졸 따라다녔다고 했다.
결국 남편 자취방까지 쫓아 들어왔고 대문을 활짝 열어놔도 도망가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키우게 된 '꼬마'와 동거하며 남편은 뼛속까지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서울로 터를 옮기게 되며 꼬마는 본가(시댁)에 맡겼고 매일 밤 어머니 침대에서 함께 자며 잘 지내는 중이다.
나와 결혼을 해서 이 집에 살게 되었을 때도 남편은 고양이가 많은 골목 환경에 신나 했다.
공포에 떨고 있는 내 눈치를 보면서도 숨길 수 없을 만큼 귀여워 죽으려고 했다.
"저렇게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다니, 너무 얄밉고 귀여워!"
"꿈뻑꿈뻑 저 눈동자 으으 정말 귀엽네!"
내겐 공포의 대상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겐 귀여운 대상이라는 사실이 괜히 서럽기도 했다.
공통분모를 하나라도 더 찾는 게 중요한 연인 사이에 우리가 잘 안 맞는 것 같은 찝찝함이었달까.
남편은 동네 고양이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도 모자라 내 옆에서 자주 고양이 영상들을 시청했다.
야옹야옹 소리가 여전히 소름 돋았던 난 예민해져서 신경질을 냈다.
"아내가 고양이 트라우마라고 하는데 고양이 소리라도 끄고 봐주면 안 돼?"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남편에게 버럭 했지만 그럴 때마다 곁눈질로 마주하게 된 영상 속 고양이들이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야르 이후 처음 마주하게 된 '꼬마'
명절에 시댁에 내려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꼬마가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심호흡도 했다.
고양이와 비슷한 반려견 뿌꾸 덕분에 극복하기 시작한 고양이 트라우마는 집사 남편을 만나게 되며 가속이 붙었고, 그렇게 내 인생에서 다시 한번 집고양이를 마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드디어 꼬마를 만나는 결전의 날이 되었다.
고양이를 사랑스러워하는 남편의 말에 세뇌가 된 것일까?
꼬마는 남편의 증언대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고 겁이 많은 소심쟁이였다.
부르면 에옹 에옹하고 대답도 하는 눈빛이 엄청 순한 녀석이었다.
처음으로 '고양이도 공포스럽지 않고 귀여울 수 있구나'라고 느끼며 살짝 울컥하기도 했다. 내 지난한 세월이 떠올라서였다.
나를 위로하듯 무서워하지 말라는 듯 꼬마는 내 옆을 떠나지 않으며 계속 애교를 부렸다.
여전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얕든 깊든 고양이 트라우마를 안고 산 세월, 18년. 이제는 내 인생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되어버린 '고양이'다.
고양이가 떠오르는 성격을 가진 뿌꾸를 만난 것도
길냥이들이 많은 골목에 위치한 옥탑방에 이사를 온 것도
고양이 밥 주는 할머니가 이웃인 것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집사 남편을 만난 것도 이제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트라우마에 정면승부하라고 내 삶이 나를 여기로 이끌어줬다는 직감적인 믿음.
참고로 나는 종교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이 내게 알려주는 방향 같은 건 있다고 믿는다.
트라우마를 극복한 경험으로 성숙해지고 있는 인생이랄까. 그래서 옥탑방 이 집에 고맙다.
오늘도 대문 밖을 나설 때면 어디에서 고양이가 튀어나올지 몰라 긴장이 된다. 식은땀도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츄르를 사러 간다.
고양이 이웃사촌 덕분에 내 삶이 무르익게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을 전하려고.
고맙다 야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