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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옥수수 Apr 14. 2022

집주인의 인품이 세입자에게 미치는 영향

집주인에게 현금이 든 봉투를 받다

집주인과 세입자는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이다.

인간관계에서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으면 세상 사람 모두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따라서 집주인과 세입자가 각자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것이 본능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집주인 내외 분들의 인품에 그만, 내 짧은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옥상 청소는 원래 집주인이 하는 건가요?

비 소식이 들리면 집주인 아저씨는 꼭 하수구 청소를 하러 올라오신다고(다세대주택에 집주인분, 우리 집까지 총 5가구가 살고 있다) 전화를 주셨다.

내가 불편하지 않게 현관과 옥상이 연결된 통로를 통해 얼른 청소만 하고 가시는 아저씨.

의문이 들었다. 옥상에 텐트를 치든 고기를 구워 먹든 내 자유, 오직 나만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옥탑방을 쓰는 건 나인데 왜 매번 아저씨가 청소를 하지?


신경 쓰이시지 않게 비 오기 전이면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고 하였다.

몇 번이나 말씀을 드리고 나서야 손을 떼셨고, 미안함과 고마움을 건네시는 집주인 내외분들이었다.

오히려 당연히 요구하셔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참 뜻밖이었다.


집주인이 신혼 인테리어를 해주다

혼자 2년을 살고 남편과 신혼집으로 살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부엌과 화장실, 거실 바닥은 인테리어가 필요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보니 소액의 보증금만 추가로 받고 새것으로 인테리어를 다시 해주신다고 하셨다. 보증금 이상의 공사비가 나온 것은 뻔히 알고 있으며, 알다시피 보증금은 나중에 돌려받는 돈이다.


그렇게 올린 보증금, 시세에 맞춰 올리신 월세로 재계약을 할 때였다. 속으로 내후년에도 월세를 또 올리시면 어쩌지 걱정이 앞섰는데 마침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셨다. 앞으로는 더 이상 월세를 올려 받지 않을 테니 꼭 집 사서 나가라고, 우리 아래층 전셋집도 그렇게 했다고 하셨다.

감사함과 동시에 그 말이 꼭 부적처럼 느껴졌다. 꼭 집을 사서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달까.


그래, 세입자가 자주 바뀌면 집주인도 골치 아프기 때문에 보통 세를 올리지 않고 쭉 사는 걸 집주인도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우리가 언젠가 나갈 때 어차피 인테리어를 해야 하니까 생각을 잘하신거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과연 그게 쉬운 일인가? 아직 집주인이 되어보지 못했지만 세를 주고 있는 입장인 부모님께도 여쭤보니, 그 결정에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신 배려가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주방 씽크대와 바닥의 Before & After


집주인 분에게 현금이 든 봉투를 받다

어느 날은 집주인 아저씨가 집에 물이 샌다고 연락을 주셨다.

오래된 주택이라 물이 새는 곳을 찾으려면 맨 꼭대기인 우리 집 마루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1박 2일 소요될 예정이라 하루만 집을 비워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친정집에 가 있어도 되고 안방은 건들지 않게 되면 그냥 하루정도야 자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아저씨가 부탁을 하셨다.


너무 마음이 불편해서 호텔을 잡아주고 싶다는 부탁이셨다. 집에서 둘이 편하게 자야 하는데 본의 아니게 공사를 하게 되어서 폐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재차 말씀하시는 집주인.

브런치를 통해 내가 집주인의 이런 호의와 배려에 놀라는 것이 이상한 것인지 묻고 싶다.

아저씨는 결국 남편과 나를 데리고 동네에 제일 좋은 호텔을 찾아 앞까지 데려다주시더니 그 앞에서 현금이 든 봉투를 건네주셨다.


호텔에 도착하여 봉투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꽤 큰 금액이 들어있어 놀라운 마음에 전화를 드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호텔비가 모자라지는 않았냐며, 내일 체크아웃하고 나가서 둘이 맛난 거 먹고 데이트하라고 더 감동을 주시는 말이었다.

뒤이어 집주인 안주인께서도 전화를 주셨다.

남편이(집주인 아저씨) 방 잡아줬다고 들었는데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숙소는 편한지 잠자리는 괜찮은지 걱정해주시는 전화였다.

울컥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함으로 꽉 채워졌다. 남편과 우리도 나중에 이런 집주인이 되자 다짐했다.


누런색 세면대와 욕조가 없어진 깨끗한 화장실


이해관계가 얽힌 사이에도 마음을 아끼지 말자

호텔까지 걸어가면서 아저씨가 해주신 말씀이 있다.

항상 잘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했더니, 사람 사는데 참 사소한 것에서 정을 느끼고 서운하고 한다면서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마음 나누고 사는 게 좋지 않은가 싶으시다고.


층간소음과 이웃 주민 간에 갈등이 깊다는 뉴스는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심한 서울 한복판 주택가에 살고 있는 우리 집.

옥상만 나가도 창문 너머 몇 가구가 사는지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한 골목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사는 다세대주택은 5가구가 살고 있음에도 매우 조용하고 쾌적하다.

모두가 서로를 배려한 덕분이지만 이렇게 집주인 분이 마음을 베풀어주시니 좋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아닐까 싶다. 집주인의 인품은 여전히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해관계가 얽힌 사이에도 마음을 아끼지 않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잘 살아보자'라는 응원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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