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옥수수 Apr 28. 2022

한 학기만에 자퇴한 심리학 대학원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살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겠고 남은 더 모르겠는 상태.

그때 내가 붙잡게 된 건 '심리학'이었다.


탈출구로 선택한 심리학 대학원

언어폭력으로 힘겹던 회사생활도 접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었던 내 마음도 내려놓고

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회사 다니며 짬짬이 대학원 진학을 위한 스터디에 매진, 탈출에 성공!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3 때 심리학과를 가고 싶었으니 대략 10년 정도 가슴에 품었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취업을 생각해 다른 과를 전공했지만 역시 남아 있는 미련은 없애야 제맛이다.


정답이라고 생각한 심리학이 오답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어도 신나고 설레기만 했던 첫 학기.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삐그덕 댔다.

외면하려고 해도 나와 맞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시하고 지루했다.


이유를 찾아봤다.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대던 시기에 가장 큰 위로가 심리학이었는데 왜일까?

심리학을 공부하게만 된다면 내 삶이 나아질 거라고 확신했는데 왜일까?

그 모든 건 내가 만든 신기루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한 학기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름 공부했던 흔적(?)


심리학은 잘못한 것이 없다

애초에 출발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어코 다녀 보고 나서 깨닫다니, 역시 가져봐야 놓을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내 삶이 나아지려면' 심리학 대학원에 꼭 진학하고, 졸업하고, 심리상담사로 거듭나야만 한다는 착각.

그건 내가 만든 착각이었다.


막상 대학원에 진학해보니 대학원 진학을 준비할 때의 나는 없었다.

삶의 벼랑 끝에서 겨우 겨우 심리학 하나 붙잡고 있던 나는 사라진 것이었다.

그렇다. 살만해졌다는 방증이었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나는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옥탑방이 내겐 심리학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뛰쳐나오다시피 오게 된 나의 옥탑방.

채식을 하고 물건을 비우며 점점 회복되고 있었는데 정작 내가 나를 알아주지 못했다.

그래서 후회 없이 자퇴할 수 있었다.

옥탑방에서 지내는 게 내겐 심리학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와 본 사람만 알아요 이 아늑함을.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되길 바란다

감명 깊게 본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나온 주인공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 속에서 그래도 난 내 편이라고 말하는 주인공.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되길 바라요"


첫 취업한 직장에서 돈도 잘 벌고 성과도 많이 냈던 나의 젊은 날.

그때 고꾸라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많은 걸 포기했지만 삶은 포기하지 않았던 건 나의 보금자리 덕분이었다.

조용하고 편안하고 아늑한 우리 집.


반지하냐 옥탑방이냐 누가누가 더 안 좋은지의 단골 주제가 나의 거주공간이지만 난 이곳에 와서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고 사랑하는 반쪽도 만났다. 그래서 애정이 가고 고마운 집이다.

인품이 훌륭하신 집주인 덕분에, 이웃을 잘 만난 덕분에, 낭만적인 감성이 있는 집의 분위기 덕분에 나는 살아났다. 나답게 잘 살고 싶어졌다.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진심으로 잘되길 바란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삶의 끝에서 붙잡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응원하겠습니다.

잘 살아봐요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