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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머대디 Sep 02. 2021

카약을 타는 법을 배우는 시간

내게 남은 3년이란 시간의 의미

내게 남은 시간을 3년으로 설정하였다. 3년 후는 내가 마흔이 되는 해이다. 동시에 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십 대와 삼십 대가 생각의 결과 방향, 역할과 임무도 너무나 달랐던 것처럼, 사십 대는 또다시 완전히 다른 세상의 문을 여는 것이라 짐작한다.(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코로나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사십 대가 시작함과 동시에 몰아닥치게 될 물살에 나는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면 물살을 타며 여전히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3년은 카약을 타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아마존에 살 때, 호수에서 카약을 타던 기억이 난다. 카약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카누인데, 인디오 친구들은 카약이라고 불렀다. 평소에는 형제들이 카약을 타고 다니는 걸 자주 보았지만, 그날은 혼자 카약을 타고 저어볼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일일강사로는 나의 포어 선생님이자 친구인 제라우드가 맡아 주었다. 카약을 타기 전 제라우드가 먼저 노를 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노를 젓는 법이라... 정말 별거 없었다. 그 친구가 뭐 대단한 걸 하는 줄 알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았는데, 그가 보여준 것은.. 그냥.. 휘적휘적.. 노젓기였다. 우리가 상상하는 바로 그 노젓기 말이다.


"자 이제 네가 해봐" 제라우드가 나무로 만들어진 노를 건넨다. 이런 식은 죽 먹기가 있나 하는 마음으로 카약에 올라탔다. 한두 명 타면 꽉 차는 카약은 마치 레이싱카 안에 들어가 앉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물에 빠질 것 같은 기분으로 제라우드가 하던 대로 노를 저었다. 그런데 정말 예상 밖의 결과였다.


카약은 노를 젓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를 뱅뱅 도는 거 아닌가. 정확히 말하면 내가 노를 저어서 뱅뱅 도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노를 젓든 배는 그냥 자기 마음대로 도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제라우드가 호수에서 카약을 잡아 끌어내고 나서 다시 노를 젓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까 그 카약 맞아? 부채로 한두 번 설설 바람을 일으키듯이 노젓기 딱 두 번으로 배는 자리를 잡더니 다시 한두 번 스윽스윽 젓더니 앞으로 나가는 거 아닌가!


결국 나는 카약을 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힘만 잔뜩 빼고 포기하고 말았다. 만약 나 홀로 강 위에 떠 있는 카약을 타고 있다면 어떨까? 나는 배 위에 있더라도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내 앞에 조금의 물살이라도 흘러내리고 있다면 나는 과연 어디까지 떠내려 가게 될 것인가.


배 위에 앉았다고 안전할 일이 아니다. 물살은 나를 알 수 없는 곳까지 데리고 갈 것이다. 나는 나 자신과 아이들을 배 위에 표류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다. 노를 저어 물살을 거슬러 원하는 지점에 정박하기를 바란다. 그렇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노젓기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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