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단상, 그로서란트(Grocerant)
그로서란트(Grocerant)라는 말을 들어 보았나요? 식재료(Grocery)와 식당(Restaurant)을 합친 용어로, 구매한 식재료를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요리해 먹는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켓과 레스토랑의 콜라보 격인 그로서란트가 몇 년 전 외식시장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지요. 모양이 예쁘지 않거나 흠이 많아 판매하지 못하는 식재료를 활용해서 간단한 먹거리 메뉴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죠.
최근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로웨이스트는 말 그대로 '낭비' 혹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넘어 발생하지 않는 데 까지 나가기 위한 실천, 운동(movement)을 말합니다. 사실 쓰레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죠.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와 같은 말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한 번쯤은 들어 본 얘기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이 같은 이슈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에는 작년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때문일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단순히 우리에게 감염병의 공포만을 가져다준 것을 넘어서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고통 가운데 방치했을 때 인류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될지를 보여주었죠. 이제 쓰레기 문제, 기후와 환경 문제는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 환경 NGO 단체만의 중심 주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제로웨이스트, 혹은 제로웨이스트적 라이프스타일이 주목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120여 군데의 제로웨이스트샵이 있다고 합니다. 제로웨이스트샵은 제로웨이스트 운동의 여러 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로 대안적 소비방식이라는 목적에 방점을 두고 있지요. 즉, 제로웨이스트라고 해서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전부 포기하자거나 산속으로 들어가자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의 소비방식을 쓰고 버리면 쓰레기가 될 뿐인 기존의 방식에서 순환이 가능한 대안적 소비방식으로 전환이 가능한지를 실험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로웨이스트샵은 제로웨이스트적 라이프 스타일로의 전환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간이역과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로서란트(Grocerant)는 못생기거나 흠이 많아 판매하기 힘든 식재료들을 간단한 메뉴로 요리하여 판매하는 것이죠. 이런 방식에 대해서 슬로건을 부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선합니다! 예쁘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못생겼지만 훌륭한 요리와 맛을 내는 재료를 만난다는 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소비적 차원에서는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제로 웨이스트(제로 라이프스타일)를 실천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로서란트의 과제는 분명합니다. '못생겼지만 맛있다', '저렴하지만 신선하다'라는 지점을 현실로 끌고 올 수 있다면, 소비자에게 가치소비에 대한 충분한 설득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요한 의의를 발견합니다. 소비의 방식이 라이프스타일, 곧 나를 대하는 방식을 대변하는 데 까지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할까요? 우리는 얼마나 소비와 삶의 방식을 나 자신과 연결하여 생각하나요? 제가 눈여겨보는 지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쁘지 않을 뿐입니다. 신선하고 맛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이 글로서란트 상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슬로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우리 스스로의 삶을 소중히 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서로 다 다르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고 특별하기 때문이죠. 그로서란트라는 제로라이프 문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