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비람이 춥다

구월 일일

by 썸머

4시 20분. 알람에 깨어 나가지 못하고 침대에 붙들려 있다. 붙든 건 아이다. "침대에서 핸드폰으로 글 쓰면 되잖아" 라며 할 일도 알려주면서.

아이 태어났을 때 산 선풍기가 틀어져 있다. 1단은 아기 바람. 2, 3. 4단이 미풍, 약풍, 강풍. 1단만 틀어도 쌀랑한데 새벽에 깬 아이가 덥다며 2단으로 바꿔 틀었다. 나는 추워 일인용 여름 이불로 바람이 닿는 팔을 감쌌다.

아이는 침대 발까치에 둔 선풍기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잔다. 나는 바람을 피해 침대 헤드 쪽으로 올라왔다. 그래도 바람이 닿는 등이 시리다. 끄고 싶지만 아이가 더워해 끄지 못한다. 이제 다시 잠이 들었으려나. 조용히 일어나 나가보아야겠다.


6:30분에 이어서.

4:50분쯤 부엌으로 나와 정리 후 책 읽기를 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두 번째 책 <녹턴> 중 말번힐스 110페이지 에서부터 재미를 느꼈다. 앞부분은 잘 읽은 첫 번째 책의 여운으로 읽어나가야지 하며 억지로 읽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관심 없는 음악분야 얘기, 작고 사소한 부분을 크게 확장해 가는 얘기는 사기꾼의 얘기를 듣는 것만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통 글이 써지지 않는 요즘 아침에 일기 쓰기를 하고 싶지 않은 건지 하려고 생각도 않고 있고 그래서 아침 시간은 많고 이 책을 이어 읽었다. 책 읽기가 그나마 가장 쉬운 일이니까. 그러다 말번힐스 내용 중 열 살부터 열세 살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까지 제일 싫어했던 선생님 얘기 부분에서 그 얘기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위축된 인간, 속으로 삼킨 감정이 분노로, 말로 표출 되어 나로는 것에서 나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고 좋았다.

이 작가의 책을 읽고 이 작가에 대해 판단을 했다. 일본인 작가로 전후 일본에 대한 일본인다운 시각이다라며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죄는 있지만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하는 것 같던 <남아있는 나날>. 약한 사람이라는 포장지로 자기를 포장하려는 얄팍함이 보였다. 그러던 게 말 못 하고 당하는 심리묘사가 드러난 글에서는 호감적으로 바뀌었다.

이해의 차이였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따라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재미없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는 등. 책을 읽고 느끼는 것은 내 생각과 감정에 달려 있었다.

다시 이야기가 끝나고 책 제목대로 녹턴이라는 소제목 부분의 글을 읽다 흥미를 잃어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아침 일기를 이어 쓴다. 선풍기 바람이 추워지고 거실 앞 뒤로 열린 문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의 변화기록을 오늘 날짜로 올리고 싶어서. 오늘의 기록을 어제처럼 오늘로, 그다음으로, 혹은 발행도 안한채 묵히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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