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 with an e
앤이 초록 지붕에 오게 된 건 우연이었다. 남자아이를 원했던 커스버트 남매의 꿈과는 반대로 여자아이인 앤이 오게 된 것이다.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에 들떴던 앤은 잘 못 데려왔다는 말에 큰 상처를 입는다.
다시 돌려보내려는 마릴라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앤.
앤의 말은 드라마를 관통하는 중요한 대사였다.
여러 난관을 지나 마침내 커스버트 가족이 된 앤 셜리 커스버트. 하지만 모든 사람의 인생이 그렇듯, 단순히 가족이 된 것만으로 앞으로의 나날에 해피엔딩만이 있을 수는 없다.
드라마에서 앤은 가혹한 환경에서 학대를 자라며 자란 소녀로 그려진다. 넓은 상상력과 낭만적인 앤의 모습이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온다. 너무도 힘든 상황을 피하기 위한 회피가 앤의 상상력을 극대화한 것.
앤은 아프고 치료받아야 하는 아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게 처음인 커스버트 남매에게 앤은 어떻게 치료해 줘야 할지 모르는 아이였다. 시대상 정신과 치료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던 때도 아니었기에 더욱 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힘들어한다.
억지로 학교에 보내려는 마릴라에게 앤은 학교를 다녀온다고 하고 나가선 가지 않는다. 숲 속의 집에서 홀로 공상을 더욱 키워만 간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던가. 앤의 기행을 결국 알게 된 마릴라와 매튜는 앤을 목사님과 만나게 한다. 어떤 가르침과 훈계를 듣고 깨달음을 얻길 바랬던 것 같은 마릴라였지만 목사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과 완전 반대였다.
집에서 결혼할 때까지 살림을 배우면 된다는 말을 듣자 마릴라는 갑자기 정신이 깨어난다. 마릴라는 앤을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앤의 등교 거부와 같은 반 학생들의 따돌림도 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뜻밖으로 향하게 된다.
같은 반 친구인 루비의 집에 불이 나고 동네 사람들 모두 물을 뿌리며 어떻게든 불길을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불은 잡힐 생각을 하지 않아 고생하던 중, 갑자기 앤은 불이 나는 집으로 들어간다. 불이 나는 집의 모든 문과 창문을 닫자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던 불이 꺼진다. 앤은 보육원의 화재 대응 매뉴얼을 읽었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앤. 다이애나 말고도 친구가 생기게 된 계기였다.
앤의 삶은 절반은 초록지붕, 절반은 학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친구가 된 다이애나뿐만 아니라, 루비, 조시, 코리 등등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앤은 자신의 꿈도 찾게 되었다.
시즌2의 7화. 조세핀 고모가 여는 파티에 참석한 앤은 책의 한 구절을 낭독하게 된다. 제인 에어에 나오는 부분을 낭독한 앤. 파티에 참석한 이들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모든 사람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드라마는 전 시즌에 걸쳐 많은 말들을 해준다. 앤의 말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릴라의 말. 가끔은 린드 부인의 말이며 어떤 때는 친구들의 말이기도 하는 말.
누군가의 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보살펴주는 약이 되는 느낌. 빨간 머리 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시즌1과 2가 어린 시절의, 초록 지붕 아래에서의 앤 이라면 시즌3은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앤 이다. 어린 시절의 아픔을 마주하고 꿈을 찾아 달려가는 앤.
어린 시절의 앤을 보다가 시즌3의 완전히 성장한 앤을 보는 건 굉장히 뿌듯한 일이다.
이 드라마는 앤의 성장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성장 또한 보여준다. 앤의 주위에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들은 시대에 맞서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 살아간다.
드라마는 따뜻함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해결하지 못한 사회문제도 보여주고 결국 포기해야 할 것도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
드라마는 시즌3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더 앤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제작사의 문제로 캔슬되어버린 앤. 앞으로 앤을 못 본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시즌3까지 달려오며 앤은 현대인의 외로운 감성을 보살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