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 떠난 호주 가족 여행 - 6
자연사 박물관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내 생일이라고 언니가 예약해 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달링 허스트에 위치한 바 레지오까지 걸어서 도착했을 땐 몹시 허기졌다. 인당 20달러면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들어가자 사람들이 많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가족들은 굴요리와 문어 샐러드,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하나 시켰다. 루꼴라 위에 치즈가 듬뿍 올려져 노릇하게 구워진 굴과 바질이 들어간 올리브 소스가 함께 나왔다. 파스타에 들어간 오징어가 우리나라에서 먹는 갑오징어보다 더 폭신폭신하고 말랑해서 정말 맛있다. 느끼한 음식을 안 좋아하는 엄마 입맛에도 맞아서 호주 여행 내내 이탈리안 음식점을 찾았다.
점심을 먹고 나와 세인트 메리 대성당과 하이드 파크를 구경하며 퀸 빅토리아 백화점으로 걸어갔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모티브로 지었다고 했는데 주변 환경이 달라서일까 언뜻 봐야 비슷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지하 바닥에는 대리석 모자이크가 있었고 은은한 불빛과 고딕 양식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분위기가 좋았다. 초를 사서 꽂고 소원을 빌었다.
하이드 파크에는 부리가 긴 새들이 많이 있었다. 장난을 좋아하는 엄마는 나뭇조각을 던져주며 새들을 낚았다.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온 까마귀는 화가 나서 꽉꽉- 큰 소리를 내며 다가왔고 우린 재빨리 도망갔다. 점심시간이라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잔디밭에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언니는 회사 근처에 이런 공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퀸 빅토리아 백화점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더 북적였고 번화가가 보였다. 호주는 공간이 넓은 건지, 사람이 적은 건지 어딜 가든 치이지 않고 여유로웠다. 도심 한가운데 뻥 뚫린 전차길 사방으로 늘어진 높은 건물들이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19세기에 영국에서 호주로 이주한 건축가들은 빅토리아 풍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빅토리아 양식은 빅토리아 여왕 재임기간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산업혁명의 절정에 이르며 손으로 조각하며 집을 짓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건축 재료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구매가 가능해졌다. 저택의 양식이 사각형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고 외장 장식을 많이 했다.
빅토리아 풍 건축은 시기별로 9개가 있지만 내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건 세 가지다. 뾰족한 지붕과 지붕 가장자리를 따라 섬세한 조각을 넣는 고딕 리바이벌, 지붕이 없거나 있으면 아주 납작하게 만들고 처마 아래나 네모난 창틀을 따라 세공을 넣는 이탈리아 나테, 팔각형의 원형 탑과 퇴창이 특징인 앤 여왕 양식까지 독특하고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네모난 건물들만 보고 살다가 시드니에서 보는 건물 디자인은 정말 이국적이다. 유럽식 건축을 좋아해서 여행을 갈 때마다 이런 도시의 풍경을 볼 때면 영화 속에 들어온 듯 설렌다.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퀸 빅토리아 빌딩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몰이라고 극찬했다. 퀸 빅토리아 빌딩(Queen Victoria Building)의 이름을 줄여 QVB라고 불린다. 실제로 빅토리아 여왕이 호주에 올 때마다 머물렀던 궁전이기도 한 빅토리아 빌딩은 시드니 중심가에 위치한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같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두꺼운 벽과 돔 모양의 지붕이 보였고 내부 천장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기대되었다. 긴 도로를 사방으로 끼고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