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 떠난 호주 가족 여행 - 8
호주 여행 여섯째 날, 전날 편의점에서 사둔 요거트를 꺼내먹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비가 온다고 해서 미술관에 가기로 했는데 하늘이 아주 맑았다.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에서 걸어가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호주현대미술센터(ACCA – Australian Centre for Contemporary Art)는 호주에서 가장 개성 있는 예술가들의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독특한 하얀 첨탑 구조물이 있어서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뚝 선 162m의 첨탑은 시내 어디서나 보이기에 파리의 에펠탑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보단 규모가 작았다. 하얀 첨탑 아래의 황금빛 그물은 발레리나의 치마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밤이면 푸른빛의 조명이 들어와 색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근처에 있는 페데 레이션 광장은 멜버른의 만남의 광장이라고 하니 365일 개방되는 이곳은 예술문화의 아이콘이 아닐까 싶다. 매주 일요일에 지역 장인들이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을 판매하는 선데이 마켓을 하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아쉬웠다.
들어가는 입구에 미니멀리즘으로 유명한 제품 디자이너, 넨도의 전시 포스터가 걸려있었는데 우리는 무료 전시를 관람하기로 했다. 멜버른 아트센터로 들어가자 빛의 조각처럼 반짝이는 오브제들이 로비에 있었다. 아직 설치 중이라 작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시어터 빌딩 1층 전시관으로 들어가자 3D 프린팅으로 만든 의상과 오브제들을 보며 전시실을 지나치자 까만 방이 나왔다. 까만 방에 파란 레이저가 격자로 이어져서 영화 속에 나올법한 공간 같았다. 마블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이 특별 훈련을 받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레이저 사이를 걸어 다니며 언니와 장난을 치다가 나왔다. 현대미술 작품을 보다 보면 가끔은 작가의 의도를 알지 않아도 보는 사람으로서 나름의 해석을 붙이는 재미가 있다. 나 혼자 하는 아주 작은 생각까지도 예술로써 의미를 가지는 점이 재밌어서 현대미술이 좋다.
이번에 들어간 전시관에는 강아지 사진이 이어졌다. 미국의 유명 사진작가, 윌리엄 웨그만의 작품은 실제로 처음 보는데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반려견을 합성 없이 폴라로이드와 디지털카메라로만 사진을 찍는 작가인데 실제로 보는 사진들은 꼭 그림 같았다. 선명한 색감과 단순한 사물로 화면을 구성한다. 옷을 걸치는 걸 좋아하는 자신의 반려견에게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때로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느낌을 준다. 독특한 작가의 작품이 머릿속에 콕 박혔다.
이번엔 중세 유럽의 미술작품들이 이어졌다. 피카소와 달리 작품까지 보고 다른 전시관으로 가자 패션쇼에 온 듯했다. 19세기 파리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머리장식과 직선적인 라인의 현대적인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이 늘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호주 역사에 관련된 그림들과 사치품 같은 소품들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입어보고 싶은 예쁜 드레스들이 많아서 가족들과 구경하기 좋았다. 다양한 소재로 만든 블랙 드레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전시실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샹들리에 조명이 세워져 있었다. 수백 개의 크리스털이 달린 섬세한 세공이 언제인지 모르는 그 당시의 호화로운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