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 떠난 호주 가족여행 - 11
호주 여행 아홉째 날, 퀸 빅토리아 마켓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겨울처럼 차가운 아침 공기에 몸이 웅크려졌다. 숙소에서 역으로 가는 길에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도로를 달리는 고풍스러운 마차를 볼 수 있었다. 빅토리아풍의 건물들과 목재 전철 그리고 마차까지 유럽에 온 듯하다.
무료 트램 존에 위치한 퀸 빅토리아 마켓은 빅토리아 주 전체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다. 청과물을 파는 활기찬 아침 시장이 보고 싶어 일찍 나왔다. 즉석음식과 함께 청과물, 육류, 유제품, 의류, 신발, 보석, 와인, 잡화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줄을 선 사람들 사이로 흩어져서 망고와 키위 베리 그리고 닭꼬치를 사 왔다. 처음 본 키위 베리는 우리나라의 다래와 같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키위맛인데 껍질째로 먹을 수 있어 먹기가 편했다.
미색의 컨테이너와 천막으로 이루어진 퀸 빅토리아 마켓은 생각보다 넓었다. 다문화 사회를 반영하듯 각국의 음식과 다양한 식재료가 늘어져있었다. 어디서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커다란 젠가를 하는 사람들과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밝고 활기찬 시장 분위기가 좋다.
여행하면서 지나쳤던 귀여운 캥거루와 코알라 인형 같은 기념품들을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관광지에서 보던 것과 비교하면 도매가 수준이었다. 영국 연방국가인 호주에선 영국 여왕을 모티브로 만든 기념품도 많았다. 마침 추워진 날씨에 웅크린 나를 보고 아빠가 호주 국기가 그려진 후드티를 하나 사주셨다. 다시 트램을 타고 로열 아케이드에 가기 위해 시내 중심가에 내렸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로열 아케이드(Royal Arcade)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아케이드다. 아케이드란 양쪽에 상점이 있는 통로를 말한다. 아치형 지붕의 유리천장으로 흡수한 햇볕에 따라 공간의 느낌이 달라진다. 1870년에 완공된 로열 아케이드는 빅토리아풍 건축으로 지어졌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검은색 철제 구조물의 장식 패턴이 공간을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아름다워 보이게 한다. 미색인 벽면에 붙은 소용돌이 모양의 몰딩과 체스판이 연상되는 매끈한 흑백의 타일 바닥이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벽면의 아치형 유리 창문에 나뭇잎 세공이 눈에 띄었다. 긴 통로를 걷는 동안 티타임을 가지러 가는 영국 귀족을 만날 것만 같았다.
멜버른은 골목을 구경하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로열 아케이드에는 빅토리아풍의 인테리어만큼이나 장식적인 제품들을 팔고 있었다. 마카롱, 초콜릿, 실크 제품, 드레스, 인형 같은 선물하기 좋게 꾸며진 물건들이 발길을 붙잡았다. 케이크 가게의 유리 진열대에는 잘 차려입고 티타임을 가지는 인형들이 움직인다. 그림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케이크들은 보기만 해도 달콤하다. 주말마다 와서 하나씩 다 먹어보고 싶어 진다.
100년이 넘는 건물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는데 정시가 될 때마다 아케이드 끝에 있는 시계에서 춤을 추는 인형들이 나온다. 커다란 두 개의 인형인 곡과 마곡(Gog&Magog)이라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라고 한다. 두 인형이 종을 치고 시계 주변의 창문에서 꼬마병정들이 나와 춤을 춘다. 방송이 울리고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함께 구경하니 놀이공원에 온 것 같다. 긴 통로를 걸으며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상점마다 보는 순간 갖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디자인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수제 초콜릿 가게들도 마법가루를 날리는 요정이 포장한 듯 온통 달콤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로열 아케이드에서 블록 아케이드로 나와 구경하다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칼라마리와 나폴리 피자, 토마토 해물 파스타를 주문했다. 호주여행내내 먹은 음식들 중 말랑한 오징어튀김, 칼라마리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퀸 빅토리아 마켓과 로열 아케이드에서 수많은 골목길을 걸어 다니느라 많이 피곤했다. 가끔은 패키지 같은 여행 계획표가 버겁지만 아프고 지쳐도 가족들 얼굴을 보면 힘이 나서 더 많이 걸을 수 있다. 네 명의 취향을 반영하여 함께 여행을 하는 건 어려웠지만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언제 또 우리가 모여 멜버른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저녁을 먹고 야경을 보러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앞의 다리를 건너 야라강으로 갔다. 강변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느낌이다. 유럽 같지만 뻔하지 않은 멜버른만의 정취가 느껴진다. 도시의 기원이 골드러시에 있기에 이토록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