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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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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주 May 14. 2024

가벼운 냉장고와 충실한 집밥


 지난 동면시즌 동안에도 밥은 충실히 지어 먹었다. 섬초시금치가 제철일 때는 붉은 빛 도는 뿌리 부분을 자르지 않고 깨끗이 씻어 데치고 들기름과 천일염에 찍어 먹는다. 향긋하고 단맛이 나는데 초장맛으로 덮이면 느낄 수 없는 맛이 난다. 


아침 최애 메뉴인 시금치랑 치즈 넣은 오믈렛은 올리브오일로 해도 좋지만 확실히 동물성 버터로 하는 게 더 맛있다. 오믈렛보다 든든하게 먹고 싶은 날은 양파나 마늘을 올리브오일에 볶고 없으면 방울토마토나 시금치, 버섯 아무거나 있는 재료 볶다가 계란물 붓고 뭉근히 익힌다. 작은 팬에 두껍게 붓고 뚜껑 덮어 속까지 익히면 맛있고 든든한 프리타타가 된다. 계란이 다 익기 전에 파르미자노 레자노나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갈아 올리면 맛이 한층 진해진다.


 종종 무를 한 두 개씩만 사다 깍두기를 담가 먹는데 깍두기는 의외로 샐러드처럼 간단히 만들 수 있어 부담 없이 자주 하게 된다. 배추는 작은 것으로 한 포기씩 담그고 김치소가 남으면 쪽파에 대충 버무려만 놔도 파김치가 된다. 밥이랑 김치 안 먹어도 살 수 있다고 맨날 얘기했는데 가까이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제철의 재료들로 요리하다보니 한식의 비중이 늘고 있다. 입맛의 관성으로 한식이 땡기는 날도 많아졌다. 두부 속에 간이 쏙 밴 청국장은 매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설탕 들어가는 반찬은 잘 안 만들게 된다. 예전엔 시간을 길게 들여 만드는 과정이 긴 요리도 자주 했지만 요즘 우리는 시간절약 면에서나 맛에서나 단순한 한그릇 음식을 좋아한다. 


냉장고가 가벼워지면 그제서야 장을 보는데 오랜만에 장을 봤다. 다음주에는 보들보들 닭고기와 달걀로 오야꼬동을 해 먹어야지. 맑은 황탯국에 두부랑 계란도 넣어야지. 통밀 또르띠야에 마리네이드해둔 닭다릿살과 양배추, 토마토, 치즈 듬뿍 넣어 두껍게 말아야겠다. 집에서 만든 그릭요거트에 오이랑 마늘 갈아 갈릭 큐컴버 소스에 푹 찍어 먹어야지. 그리고 또 힘을 내야지. 단순하고 충실한 하루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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