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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Nov 25. 2019

비울 수록  채워진 나의 공간

미니멀 라이프 : 물건 편

텅 빈 캐리어를 연다. 이 작은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필요한 물건부터 담는다. 옷, 신발, 화장품, 멀티탭, 세면도구를 넣고 나니 더 이상 공간이 없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이것들로 살아가는 거다.


1학기, 여름방학, 2학기, 겨울방학. 제주와 서울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다 보니 일 년에 네 번 이사를 한다. 정리를 하다 보면 입지 않은 옷과 쓰지 않은 물건을 다시 택배 상자에 넣는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펼쳐 보지 않는 토익책, 필요할 것 같았던 블랙 팬츠들, 감흥 없는 여행지에서 산 엽서 등 지인에게 주거나 당근 마켓에 팔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필요한 물건만 남았다.

돈 절약이 되는 미니멈 라이프

누군가는 살까 말까 고민될 때 사지 말라고 공식을 외쳤지만 나는 캐리어에 넣고 싶은 물건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꼭 갖고 싶고 꼭 필요한 것만 산다. 전에는 사는 게 남는 거다 생각하고 배를 굶겼다. 이제는 가진 걸 비워버리니 차라리 한 끼 더 먹는 게 남는 거다. 그렇게 내 배는 두둑해졌다.


카드를 들고 가장 망설여지는 곳은 다름 아닌 서점이다. 나에게 책은 세상의 절반이지만 책은 옷보다 무겁다. 이사할 때 책은 벽돌이 된다. 수하물을 부칠 때 캐리어에 빈 공간이 있어도 책이 있으면 키로수가 금방 채워진다. 그때마다 꺼내 가방에 넣어 기내에 가지고 타야 했는데 어깨가 가방끈에 뚫릴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전자책이다. 전자책은 일톤의 책도 오백 그람으로 해결되는 도라에몽 같은 친구다.


비우는 것은 곧 채우는 것이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로

미니멀한 공간에 좋아하는 것을 가득 채우기로 했다.(갑자기 맥시멈?ㅎㅎ) 빈 공간을 ‘여름‘으로 채웠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 포스터를 서울 시청 미술관에서 샀다. 포스터가 들은 원통을 들고 제주도까지 가 룸메의 허락 없이 기숙사 문에 붙였다. 수납장에는 비치용품이 가득하다. 라이언 서핑 튜브, 실내 수영복과 비치 수영복, 스노클링 장비가 있다. 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나의 작은 방은 여름을 생각한다. 삼양 해수욕장에서 먹던 수박을 떠올리고, 맥주를 마시며 보던 노을을 추억한다.


‘어쩔 수 없는’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감당해야 할 부피를 줄였다. 비우고 비우다 보니 필요한 것만 남았다. 비우는 것은 물건이 제 주인을 찾고, 좋아하는 것으로 공간을 채우고,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삼 년간 열두 번의 이사로 비우고 비웠지만 여전히 더 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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