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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Oct 08. 2019

사라진 윌 바이어스를 찾아서

프롤로그

의사들은 동성애를 고칠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동성애는 반사회적 정신장애, 에이즈, 즉 사회악이었다. 과거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을 교도소에 수감하거나 정신병원에 가두었다. 사람들이 주먹으로 치고 발길질을 해도 그들은 보호받지 못했다. 1969년 6월 말 뉴욕, 경찰들은 여느 때처럼 스톤윌 게이바에 들어갔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동성애가 죄악이냐! 취향일 뿐이다!” 주춤했지만 하나 둘 동조하기 시작했다. 계획되지 않은 자발적 시위였다. 경찰들은 물러났고 이 사건은 뉴스에 크게 났다. 스톤윌바는 게이들의 항쟁 집결지가 되었다. 이념이 맞는 신문사와 기관을 찾아 함께 역사를 이뤄나갔다. 그러부터 50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을 ‘차별주의자’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 있어요?’라는 질문은 ‘만나는 사람 있어요?’로 바뀌었다. 더 나아가 ‘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본인의 배우자가 성전환 수술을 한다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미국의 피트 부티지지 시장은 본인이 게이라는 것을 커밍아웃했고 2020년 대선에 출마할 것을 공표했다. 6월 말은 스톤윌 항쟁을 기념해 세계 곳곳에서 게이 퍼레이드가 열린다. 퍼레이드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이성애자에게도 국제적인 축제가 되었다. 모든 것은 보고, 듣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SOMA 미술관

장애인 편견도 마찬가지다. 보고, 듣고, 생각해야 한다. 평소 장애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확신하지 않았으면 한다. 편견은 단순히 ‘장애인 차별 없는 세상 함께 만들어요’라는 슬로건이 지워주지 않는다. 두 다리가 멀쩡한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휠체어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잘못도, 죄악이 아니다. 평소에 장애에 관해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운 좋게 대학 생활 중 장애인 친구들과 자폐성 장애인 동생을 둔 친구를 곁에 두었다.


생각보다 장애인은 많고 우리는 아주 모른다. 내가 그랬듯, 당신이 그렇듯 학창 시절 장애를 가진 동네 친구에게 미안할 정도로 무심했으며 지금도 별 다를 것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피아노 체르니 40까지 뗀 시각장애인이 놀랍다면, 혹은 주변에 장애인의 가족이 있다면 읽어 보길 추천한다. 장애인의 세상은 어떤지, 무엇이 차별인지, 그들의 가족은 안녕한지 접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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