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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Oct 10. 2019

그는 여름을 겨울이라, 봄을 가을이라 했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처음 만난 건 만으로 5살이 되는 해였다. 그 애에게 나는 친구였지만, 그 애는 내 친구가 아니었다.유치원 입학식 날이었다. 동급생에 비해 등치가 아주 컸고 눈이 옆으로 쭉 찢어진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애는 파랗고 분홍색이 섞인 나와 같은 가방을 메고 풀잎반 앞에 서있었다. 무섭게 생긴 것이 공포심이 들었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재는 대체 왜 저렇게 된 거래?” “몰라, 엄마 말로는 우리보다 한 살 많대!” 한 살 차이가 천지차이였던 그 시절 이것은 어마어마한 빅뉴스였다. 그 애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마주치면 슬쩍 피하거나 건네 오는 인사에 응답만 건넸다.


모든 유치원생이 그렇듯 그 애도 유치원과 가까이 살았다. 같은 아파트, 옆 라인.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와 땅을 파고 노는데 어느 날은 키가 큰 교복을 입은 학생이 지나갔다. 친구가 말했다. “한결이네 형 이래!(가명) 근데 정상이고 공부도 잘한대.“ 슬쩍 보니 그 애와 비슷한 점은 보이지 않고 정말 정상 같았다.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는 다른 학교를 갔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탓에 종종 마주치곤 했다. 마주칠 때마다 한결이는 같은 질문을 연신 반복했다.

“안녕. 다미. 어. 어. 지금 몇 시야?” (그 애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매번 놀랐다)

“어? 안녕. 지금? 4시 50분이야.”

“응. 그런데. 그런데.”

“응?”“그런데. 지금 몇 시야?”

“지금 4시 50분이라구! 5시가 다돼가는 4시 50분!”한결이는 다음 날에도, 계절이 바뀌고 두 번의 산타가 다녀가도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14살이 되자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니는  통합교육 학교였다. 전교에는 한결이를 포함해 5명 정도의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한 학년에 13반이나 되는 전교생에게 소문난 장애인이었다. 한결이는 키가 조금 큰 것 외로 유치원 때와 바뀐 것이 없었다. 무서웠던 그 애가 이제는 어린애같이 느껴졌다.한결이는 아이들에게 눈요깃거리 거나 장난거리였다. 아이들은 선생님 눈을 피해 한결이를 괴롭혔다. 샤프로 두툼한 팔을 툭툭 찌르면 그 애는 “이~이이~!”하며 이상한 반응을 보였고 주변에 앉은 아이들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장애’라는 단어와 한결이의 이름은 동일한 단어였다. 조금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응~너 한결이~” 혹은 “너 장애인~”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놀림을 받은 아이는 장난스럽게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결이는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주변에 앉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어. 어. 영은. 어. 지금 몇 시야?”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들도 한결이를 어려워하는 듯 보였다.


담임 선생님은 한 달에 한두 번 한결이를 먼저 집에 보내고 아이들에게 경고를 했다. “한결이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요새 몸에 꼬집어서 멍이 든 자국이 많이 보여 속상하시다고. 한결이 괴롭히지 마라.” 아이들은 선생님의 짧은 종례를 문 밖을 나서자마자 잊었다. 나는 그 애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방관자로 가끔 시간만 알려주는 의미 없는 시계로 졸업했다. 그 후로 한결이는 이사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내 일상에 장애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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