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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Oct 13. 2019

첫 경험, 그렇게 나는 변했다.

대학에서 복수전공으로 사회복지를 선택하고 가장 먼저 배운 말은 ‘비장애인’이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을 ‘정상’으로 규정한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비정상이 되고 단어의 의미상 괴물 같은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장애인의 반대말이 비장애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비장애인의 ‘비’는 한자로 준비할 비다. 장애인은 장애를 가진 사람, 비장애인은 장애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결국 우리는 서로 반대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서울 사람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대학을 제주로 갔기 때문이다. 서울 사람은 1천만 명, 제주사람은 64만 명인데 나는 그 섬에서 육지에서 온 신기한 입학생이었다. 학연, 지연으로 이뤄진 과활동이 적응될 리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친구가 없었다. 2학년이 돼가는데 바람과 돌 뿐인 나는 외로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친구라도 사귀어 볼까 하고 신청한 것이 대외활동인 SK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 리더그룹이었다. 전국의 63명의 어마 장장한 대학생들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그룹이었다.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리더그룹 모집을 나는 봉사자 모집으로 착각하고 지원했다. 1차 6,000자 자소서 합격, 2차 블로그 콘텐츠 제작 합격, 그리고 3차 그룹 면접 당일 내가 지원한 것이 리더그룹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나는 리더로 선발되어 제주의 봉사자를 선발했다.


봉사활동 경험이 없던 나는 장애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팀원 중 아무도 시간이 되지 않는 금요일 오전에 나만 무진장 한가했던 이유였다. 나는 장애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만나본 장애인은 학창 시절 주구장창 시간을 물었던 한결이 뿐이었고 그 역시 잘 알지 못했다. 한 달 안에 8주치 봉사 프로그램 기획, 기관 섭외, 봉사자 모집이 이루어져야 했다. 간호학과 친구에게 의견을 물어가며 ‘미술활동을 하며 사회성을 키운다’는 아트 투게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제주는 복지 수준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 나의 귀여운 프로그램을 받아줄 기관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제주대학 근처 기관에서 받아주셨다.


나를 장애 프로그램의 리더라 칭하는 봉사자 10명이 모였다. 우리 중 장애인에 익숙한 사람은 없었다. 대상자는 30-40대 지적, 자폐성 장애를 가진 분들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감정과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 물감으로 벚꽃 찍기, 자화상 그리기, 스크래치 보드 긁기 등의 활동을 했다. 활동 과정에서 우리는 그들이 봉사자들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신기했고, 화가가 되고 싶다는 발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것도 얕은 편견이었다.) 그 달 나와 팀원들의 장애인에 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담아 SK SUNNY 공식 사이트에 ‘첫 경험, 우리는 그렇게 변했다.’를 발행했다.



제주에서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대외활동은 일 년간 나를 복지계의 전문가로 만들어 놓았다. 3학년이 되자 같이 활동했던 친구가 기기변경을 강제했던 상담직원처럼 세상에 이런 기회는 없다며 ‘너는 대체 이걸 왜 고민하니’라는 투로 사회복지 복수전공을 강제했고, 나는 다음날 신청서를 제출해 팔랑귀 명성을 지켜나갔다.


복수전공을 사회복지로 선택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소득분위가 (이유 없이) 높아 매번 근로장학생 지원자격이 되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소득분위와 상관없는 곳,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센터에서는 장애 학생과 같은 수업을 듣는 근로 학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마침 그 해에 사회복지 전공을 선택한 장애학생들이 많았다. 대부분 수업이 겹치는 나는 구하기 힘든 고급인력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편견을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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