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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Oct 17. 2019

아주 보통의 하루

장애학생지원센터 문을 열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친구, 오른쪽 검지로 점자를 읽는 친구, 수화로 말하는 친구,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는 친구 등이 있다. 우리는 이들의 불편함이라는 간지러운 구석을 시원하게 긁어주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같은 장애를 가져도 필요한 도움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체 장애를 가진 친구 중 휠체어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걸어 식당 의자로 이동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다리를 휠체어 발판 위로 누군가 옮겨주어야 하는 친구가 있다.


서울대, 강원대 다음으로 큰 캠퍼스는 제주대학교다. 정문에 들어서면 4차선이 길게 뻗어 있다. 캠퍼스에서 차를 타고 다니는 학생도 적지 않다. 복수전공을 하는 나는 자연과학대에서 경상대까지 20분을 걸어야 한다. 버스를 타고 학교 정문에 내리면 기숙사까지 걸어서 30분이다. 그 길이 지긋지긋했던 나는 전기 자전거를 구입해 타고 다녔다. 정문에 가끔 전동 킥보드 대여 장사를 하는 날은 학생들이 줄 서있다.

나의 첫 전동스쿠터

월요일 6교시는 이슬과 같은 수업이다. 자연과학대 NS101 강의실 앞에서 이슬을 기다린다. 수업이 마치는 대로 다음 강의실로 이동해야 한다. 1시 45분쯤 되자 우당탕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린다. 가방을 멘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잠시 후 이슬의 모습이 보인다. 귀에 보청기를 낀 이슬은 오른쪽 다리로 지탱해 걸어 나온다. “안녕 이슬아!!!!!!! 이제 인행사(인간 행동과 사회환경) 시간이지!!!!!” 큰 소리로 이슬에게 입모양을 과하게 보여주며 말한다. 이슬이 맞다며 팔짱을 낀다. 이슬과 걸을 때는 3배로 느린 속도로 걸어야 한다. 내리막은 더 느리다. 이슬은 왼 손목에 찬 시계를 자꾸 보며 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미안 나 좀 일으켜줘”한다.해양과학대학 1층에 도착했다. 이슬과 엘리베이터 쪽으로 걷는다. 먼저 달려가 위쪽으로 뻗어있는 화살표 버튼을 눌러 둔다.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안에 교수님들이 있다. 교수님들이 이슬을 보더니 슬금슬금 구석으로 자리를 피해 준다. 4층 버튼을 누른다. 교수님들이 나를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아, 나의 학점이 올라가는구나.’ 싶다. 교수님에게 방긋 웃으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나는 썩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강의실로 걷는다. 아주 느리게.


강의실에 도착해 맨 앞자리에 앉는다. 여럿 우리를 흘끔 쳐다보고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슬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시선이 싫다. 교수님이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한다. 이슬은 교수님의 입모양에 집중한다. 교수님이 물을 마시고 텀블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180페이지로 넘어가세요.” 이슬은 물음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책장을 넘겨준다.수업이 끝나면 장애인 콜택시 번호를 눌러 예약을 한다. 오늘은 20분이 지나서야 배차가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이슬을 일으켜 강의실에 들어왔던 길 역순으로 건물 밖으로 나간다. 쌀쌀한 바람을 맞는데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표시가 붙은 택시가 왔다. 이슬을 태우고 “안녕!!!! 내일 봐!!!!!”한다. 이슬은 언제나 그렇듯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문을 닫는다. 아주 보통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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