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미 Oct 18. 2019

세상은 요지경 돌고 도는 내 인생

노들섬 표류기

제주에서 3년 만에 돌아와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 한 학기 휴학을 냈다. 사실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는데 브런치를 통해 노들 서가의 일상 작가가 되었다. 돌아온 방은 내 방이 아니었다. 가끔 서울에 오면 ‘어차피 나는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야’ 하면서 개의치 않았는데 이제는 여기에 살아야 한다. 구석에 쌓인 상자와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체중계, 붙박이 옷장에는 엄마의 등산용품이 자리 잡고 있다. 심각한 것은 책장이다. 원래는 천장의 이분의 일만 한 게 하나였는데 하나가 더 생겼다. 언니가 새로운 책장을 샀는데 아버지는 옛날 책장을 버릴 수 없다며 내 방에 가져다 두었다.(????) 내 책은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좁게 살아야 한다니 억울하다. 어제는 꿈을 꿨다.  우리 집에 숨겨졌던 큰 방이 갑자기 하나 나타났다. 나는 이때다 싶어 책장을 옮겨놨다. 마음이 가벼웠다. 그 순간 눈이 떠졌는데 커다란 책장 두 개가 보였다. 현실이 꿈이길 바랬다.


지난주는 두 달 만에 제주에 다녀왔다. 내가 떠난 8월의 제주는 여름이었는데 이제는 억새가 피어 가을이 되어 있었다. 제주는 빨리 변한다. 내가 있는 3년 동안 제주는 많이 변했다. 국회의원 선거로 원희룡 도지사가 재선에 선공해 두 번째 임기를 하게 되었다. 쓰레기 처리 방식도 두세 번 바뀌었다. 처음 제주에 갔을 때는 뭐든지 매일 배출이었는데 갑자기 월요일은 플라스틱, 화요일은 종이 이런 식의 요일 배출로 바뀌었다. 무단 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요일별+시간제 배출로 강화됐다. 이제는 정해진 요일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쓰레기만 버릴 수 있다. 이쯤 되니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됐다.


나도 많이 변했다. 바다는 쳐다만 봤었는데 이제는 스노클링 장비를 끼고 물이랑 죽고 못 사는 사람이 돼버렸다. 잃어버려서 새로 발급받은 민증에는 제주도 주소가 찍혔다. 돈 아끼고 모으는 방법도 조금 알 것 같다. 흥청망청 돈 쓰던 시절 포춘쿠키를 뽑았다. ‘Spend less, Save more’ 충격. 이건 엄마가 보낸 메시지인가? 아님 맨날 잔소리하던 룸메 새음이? 그 종이를 보조배터리에 붙여놨다. 세상은 참 신기하다. 지겨웠던 서울은 새로워졌다. 노들섬에서 보는 노을도 서울의 새로움에 한몫했다.


요즘은 단기로 주말에 행사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하는데 이력서를 넣어도 연락이 안 온다. 제주 같았으면 바로 오는데 서울은 돈 벌기도 참 힘들다. 언니한테 얘기하니까 나한테 ‘서울 사람 나빠요’ 성대모사를 한다. 다음 주는 노들 서가 집필실 휴일이라 제주에 다시 가려고 한다. 제주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아주 보통의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