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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Nov 27. 2019

프라지아로 채워진 나의 인간관계

미니멀 라이프 : 사람편

사람에게 어떻게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냐며 사이코패스가 아니냐는 사람도 있을 거다. 별 수 있냐. 내 인생 내 마음이다! 백 번 넘는 비행을 했고 백 번 넘는 이별을 했다. 정착 없는 내 삶에 앞으로도 이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난날을 토대로, 그리고 예상되는 미래를 토대로 슬프고 충격적인 결말을 맞았다. 사람에게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남들은 서른에 친구들이 취직하고 결혼하면 하나 둘 멀어진다던데 나는 서른을 일찍 맞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일 년 만에 멀어졌다. 친구들이 '그때 갔던 술집'을 말하면 침묵했고 생일파티나 망년회도 가지 못했다. 말도 안돼. 마음도 정신도 빠르게 늙어갔다. 한동안 멀어진 친구들은 나를 괴롭혔다. 나는 자주 떠났고 돌아갈 때마다 달라진 관계를 다시 확인했고, 서운했다.

서울과 제주. 어디를 가든 나는 이방인이다. 서울에서는 제주로 떠난 이효리 같은 친구고 제주에서는 고층 빌딩에서 들어와 잠시 머무르는 타지인이다. 그렇게 나는 땅에 서있는 게 아니라 둥둥 떠있었다. 제주에서 친구를 사귀어도 별 수 없었다. 방학이 되면 협재로 엠티를 가자는 약속도, 제주직항으로 해외여행을 가자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처음에는 친구의 탓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대로인데 너는 왜 멀어져 가는지. 멀어진 관계를 붙잡고 싶었다. 그다음에는 내 탓이라 생각했다. 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다 보니 이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여긴다. 인생은 독고다이. 세상은 혼자 사는 거다. 혼자가 된 나는 연락처를 정리했다. 애매한 관계는 떠나보내고 불편한 모임은 나가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로 돌아가려 서두르는 토끼처럼 살았다. 서울에 머물면 공부를 하거나 공연과 전시를 다녔고, 제주에서는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는 몇 개월이면 떠나야 했다. 장기 계약을 해야 저렴하다고 재차 강조하던 필라테스 사장님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했다. 떠나야 하는 나는 가끔 만나도 깊어질 사람만 만났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은 뭐든 거절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는 친구에게 "이번에는 안돼. 다음에 보자"고 답했다.


"다음에 보자"가 먹히지 않자 거짓말을 시작했다. SNS를 혼돈으로 만들었다. 제주도 사진을 올렸다가 서울 사진을 올렸다가 했다. 대체 얘는 서울인지, 제주인지 알 수 없게 했다. 서울 친구가 인스타그램을 보고 "너 서울이야?" 물으면 "아니 나 제주 내려왔어"라 답했고 제주 친구가 "제주도야?" 물으면 "나 서울이야"하고 답했다. 나는 어디에도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행동거지를 본 친구는 "너 그러다 왕따 된다"했다.


2018년 새 학기가 시작한 봄에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상하게도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이 기쁘면서도 두렵다. 이런 내 마음은 무얼까 궁금하고, 무섭다. 정작 나 자신은 너무 외로운 사람이라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다. 또 이와 반대로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다. 단단하기를 바랐던 내 마음이 어이없게도, 이해도 안 되게 누군가로 인해 쉽게 상처 받고 무너져 내렸기 때문일까. 한동안 내가 사람에게 긋는 아주 굵고 굵은 획이 무엇인지 의심해 봐야겠다.


텅 빈 방 문을 열자마자, 버스에 앉아 이어폰을 끼며 외로움을 쉽게 느꼈다. 사람이 궁금하다. 그러면서 막상 누군가 나타나면 호다닥 도망쳤다. 누군가 "우리 다 같이 술도 먹으러 가고 여행도 가요"하면 마음에서 '헉'소리가 난다. 다시 멀어질 텐데. 함께이면서 나는 혼자였다.


사람에게 미니멀 라이프란. 혼자인 삶을 유연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기분에 따라 나는 자주 바뀐다. 서울 스터디 사람들에게는 진지하고 낯가리는 사람이 되고, 제주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는 밝고 붙임성 좋은 사람이다. 항상 활발할 필요도, 항상 조용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나는 좁아짐과 동시에 넓어졌다. 새로운 사람을 힘써 반기고 쿨하게 보내며 누군가와 멀어져도 더 이상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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