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아이를 지키는 법
2교시 수업.
여느 때처럼 모두가 즐겁고, 빡 센 수업이 흘러가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남학생들은 폰으로 게임을 하며 낄낄대고, 뒷자리 여학생 들은 젤리를 나눠 먹을 때.
조용한 책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만은, 혼자였다.
기준이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문제집을 넘기고 있었다.
웃지 않았고, 시선은 늘 책상 아래 어디쯤에 걸려 있었다.
나는 일부러 수업시간에 기준이에게 더 많은 질문을 했고,
똑똑한 그 아이가 수업 시간 동안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두 번 수업을 하고 나니 바로 알 수 있었다.
기준이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상황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세 번째 수업의 쉬는 시간, 우리 반 남학생 중 하나가 기준이의 등 뒤를 툭툭 치며 말했다.
“김기준 저 옷 아직도 입네. 작년에도 그거 입고 다니지 않았어?”
“야, 너네 엄마가 밥 안 주냐? 야야, 쟤 어깨 좁은 거 봐.”
그 무리의 다른 남자아이들은 비웃는 어조로 말을 받아쳤다.
“야 쟤한테 말 걸지 마 짜증 나, 난 쟤 숨 쉬는 것도 싫어.”
말끝마다 “장난이야”라는 웃음이 붙었지만,
그 실처럼 얇은
가시는 분명히 기준이를 찌르는 송곳임을
나는 단번에 알아챘다.
쉬는 시간에 그 대화를 들은 나는, 수업 시작 직 후 무겁게 들었던 분필을 결국 내려놓고 강의대를 두 손으로 잡았다.
"사랑하는 우리 반.
너희. 천운으로 나 만났지. 인정?”
아이들은 웃었다
“네 쌤!”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도 천운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 “
아이들의 표정은 의아해졌다.
“너희가 내 교실에서든, 교실 밖에서든 나를 만나고 나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가 있어."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첫째. 욕.
너희 인생의 모든 기초 공사를 하는 귀한 이 시점에
입에 걸레를 물면, 앞으로 너네 인생 전체가 재활용도 안 되는 걸레가 될 수 있어."
몇몇 아이들이 웃음을 삼켰다.
"둘째. 다른 친구 무시하거나 기분 상하게 하는 말.
실수로 라도 안 돼.
한 배를 탄 전우에게 상처 주면, 그 배에서 내릴 사람은 너야.”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나는 더 무겁고,
더더욱 무섭게 말했다.
"셋째, 패드립.
내 교실에서 ‘니 애미가 어쩌고’
안돼."
“넷째, 섹드립.
내 교실에서 섹드립 치면,
그날 바로 부모님께 전달할 거야.
그렇게 학부모 상담을 하는 상상은 너희에게 맡길게."
교실은 침묵과 긴장에 젖었다.
"마지막 다섯째.
하기 싫다는 말과 태도.
지금 ‘너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으면, 나가.
여기는
자기 미래를 책임지려고 최선을 다 하고,
부모님 서포트에 최고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가. 치. 있. 는. 애들이 오는 곳이야.
여기선 누구도 대충 살면 안 돼.
나부터가 그래."
얼음장 보다 더 차갑고 단단한 단호함.
내 말이 끝나자 교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모든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기준이는 처음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작고 흔들리는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는 말 못 할 감정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기준이의 그 눈빛은
기준이의 나이처럼.
나를 15살의 김지은으로 데려갔다.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모든 반에 한 명씩 존재하던 ‘왕따’였다.
나는 인정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3년 내내 반장, 선도부, 임원을 도맡았지만,
그건 친구가 없음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위장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은 바글바글했지만, 내 자리 옆은 늘 비어 있었다.
그건 우연도 아니었고, 배려도 아니었다.
“야 반장, 나 1000원만 “
그 돈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언제나 그룹으로 몰려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몇 번이고 여자 아이들의 그룹들에 끼어보려고 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겪었던 그룹 내 따돌림 때문에 , 나는 적응할 수 없었다.
친한 친구들이 나를 따돌리고, 괴롭힌다는 두려움.
그래서 중학생이 된 나는 '김지은'이 아니라 ‘임원 하는 착한 허수아비’가 되어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순진한 먹잇감을 `찾은 사춘기 소녀들의 괴롭힘은 점점 더 노골적이 되었다.
2학년 여름, 누군가 내 가방에 급식 잔반을 부어놓았다.
노란 국물에 젖은 교과서를 꺼낼 때 손끝이 떨렸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닳도록 문지르던 그날의 물소리가 아직도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다른 사람이 알아챌까 봐,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화장실에서
나는 미친 듯이 가방을 문질렀다.
‘이걸 누구한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이걸 말하면 속상해할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냥, 물을 더 틀었다.
그 물소리가, 나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된. 김지은.
우리 반에서 기준이를 구했던 건,
어른이 된 내가 나의 중학생 시절을 구했던 것 같았다.
나는 기준이를 구해서 행복했고,
기준이의 어머님은 다음날 학원으로 울면서 전화를 하셨다.
“단 한 번도 애가 학원 얘기를 한 적이 없어서…..”
로 시작된 어느 어머니의 아픈 마음.
나는 그저 밝고 짧게 대답했다.
“어머님, 기준이가 저를 만나서, 저도 너무 감사해요”
내가 따돌림당하던
그 시절,
나를 안아주는 어른이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
며칠 후 수업 끝나고 아이들이 나갈 때,
기준이가 조용히 내 책상에 초콜릿 박스 하나를 두고 갔다.
눈이 마주치자 기준이는 쑥스러운 듯 작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기준아."
"네, 쌤."
그 작은 미소와 말 한마디가 며칠간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나의 그 무섭고 강인한 태도 이후 강의실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들의 몸가짐, 말투, 수업 태도부터 진지해졌다.
“야, 김기준 이거 GS신상인데 한번 먹어볼래?”
“야 너 김기준 좋아하냐?”
“아니거든! 김기준이 먹어보고 맛없으면 안 먹으려고 그런 거야!”
"뻥치지 마 너 얼굴 빨개졌어!"
쉬는 시간 여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번졌고,
그 이후로도 여자 아이들은 종종 기준이 책상 위에 과자 하나, 젤리 두어 개를 슬쩍 올려두곤 했다.
남자아이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기준이와 소통했다.
“김기준, 너 롤 티어 뭐냐? 실버지? 그럼 우리 팀으로 올래?
우린 이미 바닥이야, 더 잃을 것도 없어.”
옆의 남학생 한 명이 말을 거들었다.
“그래 우리 팀은 이미 폭망 해가지고,
기준이 너도 그냥 편하게 들어와서 막 해
그리고 이선우 얘, 특히 진짜 못해”
"야! 그걸 왜 벌써 말하는데!"
모두가 웃었고, 기준이의 얼굴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중학생 시절 같았던,
열다섯 살의 기준이는
조금씩 행복해 지고 있었다.
나도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