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연애는 하고 싶은데 사람은 싫어
토요일 오전 8시.
내 강의실 문을 노크한 건 같은 학년 선생님이었다.
“쌤 커피 사 오셨어요? 같이 커피 사러 가요.”
우린 대치역 3번 출구 스타벅스에서 늘 하던 대로,
좀비 같은 얼굴로 커피를 주문했다.
“제 대학 동기인데, 직업도 안정적이고, 외모도 딱 선생님 스타일이라니까요.”
“에~? 제 스타일이 뭔데요 쌤”
“키 크고, 흰 셔츠 잘 어울리는 직장인 느낌? 쌤 연상 좋아한다면서요 쌤 88이라고 했죠? 85면 딱이네 딱이야 크~ 진짜 하얀 셔츠 입고 나갔으면 좋겠다.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둘이”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벤티사이즈 아메리카노를 들었다.
“알겠어요 쌤. 한번 만나볼게요.”
일요일 오후.
소개팅 장소는 도곡동 조용한 커피숍이었다.
웨딩 스튜디오, 드레스샵 많은 동네,
모임과 소개팅이 반복되는 듯한 뻔한 카페.
약속 시간 3분 전, 하얀 셔츠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진짜 흰 셔츠 입고 나왔네. 느낌 좋은데?’
단정한 셔츠 깃, 반짝이는 구두. 누가 봐도 신경 엄청 쓰고 나온 것 같았다.
남자는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소개를 할 때는 또박또박 말했다.
“네, 저는 스타트업에서 데이터 전략 쪽 일하고 있고요.
뭐, 회사는 바쁘지만 재밌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와... 멋있네요. 현아쌤께 전해 들으셨겠 지만, 저는 현아쌤이랑 같은 캠퍼스, 같은 학년에서 아이들 영어 가르치고 있어요.”
“아, 거기 워낙 큰 회사라, 직장 동료라고만 들어서… ‘강사’ 시구나…”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남자의 눈빛이 아주 조금 바뀌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목소리는 살짝 느려졌다.
“현아가 그 회사에서 강사로 일하는 게 엄청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시는 줄 알았어요. 하하, 현아가 시험기간만 되면 퇴근을 못한다고 하던데…
많이 힘들죠?”
나는 단번에 느꼈다.
이 남자, ‘어떻게든 예의는 차려야겠다’는 태도라는 걸.
일에 치여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서.
나는 아주 많이 연습된,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
“네. 뭐... 그래도 전 아이들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가 손에 든 머그잔을 가볍게 돌리며 말했다.
“사실 저도 어제 출근해서 새벽 2시까지 프로젝트했어요.”
“아, 어제도 일하셨어요? 저랑 똑같네요. 대한민국 사람들 참 열심히 살아요, 그죠.”
“네, 출근하는 날도 아닌데 할게 없어서...가끔은 제가 살짝 미쳤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하.”
그 뒤로의 대화는 이상할 정도로 날씨, 경제, 여행, 얘기만 오갔다.
슬슬 대화의 빈 공간이 생기고 ‘이젠 무슨 얘기를 하지’라고 생각할 즈음
남자는 물었다.
“혹시... 결혼 생각은 있으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꽤 놀랐지만 나는 살짝 웃었다.
“어... 뭐, 나중에 좋은 인연 있으면요.
아직은 제 일도 바쁘고... 뭐랄까, 좀 더 안정적이 되면? 생각해 보려고요.”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말을 이어갔다.
“다들 결혼은... 사람과 시기가 맞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말이 제일 싫다.
나는 시기도 놓쳤고, 사람도 놓쳤으니까.
스물아홉에 한 번,
진짜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타이밍이 엉망이었고,
나는 결혼에 대한 아무 준비도 안 돼 있었다.
나만 잔해를 오래 안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창밖을 봤다.
도산동에 맞게, 카페 맞은편엔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이 포즈를 바꾸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참, 행복해 보이네...’
“혹시 그럼 술은...?”
“아, 저는 와인 좋아해요.”
“아~ 와인파시구나. 저는... 소주파예요.”
그는 멋쩍게 웃었다.
“삼겹살엔 무조건 소주 아닙니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근데 전 소주 마시면 세상과 단절돼요. 다음 날까지요.”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럼... 국밥은요?”
나는 조금 당황했다.
“국, 국밥이요? 그러고 보니까 국밥 먹을 기회가 없네요? 음...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진짜요?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은 무조건 국밥집 갑니다.”
“저도 국밥 좋아해요. 먹을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학원가엔 왜 국밥집이 없을까요?”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머릿속은 벌써 복잡해졌다.
'소주+국밥 조합이면, 다음엔 곱창에 소맥 말자는 얘기 나오겠네.
근데 곱창에 소맥 먹을 만큼, 이 남자와 내 관계가 발전이 될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럼 결혼하고 나면... 식사는 좀... 갈릴 수도 있겠네요?”
‘결혼하고 나면’이란 단어가 너무 빠르게 나왔다.
내 머릿속은 갑자기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아… 뭐, 결혼은 하긴 해야죠. 근데 이번생에 될까요?”
나는 쾌활하게 웃었지만, 그 웃음이 내 얼굴에 붙어 있던 건 딱 3초였다.
나는 잠시 말없이 라테잔을 돌렸다.
컵 안에서 회오리치는 우유 거품처럼, 내 생각도 그 자리에 맴돌고 있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남들이 다 잘만 하는 '연애'와 '결혼' 같은 걸 나만 자꾸 실패해서 이렇게 마음이 굳어버린 건지.
어느 순간부터
누가 다정하게 대해주면 더 불안해졌다.
너무 쉽게 기대게 될까 봐,
또다시 실망하게 될까 봐,
결국 나 혼자였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될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웠다.
모두가 하나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안정을 찾아가는데.
나는 왜 늘 출근길에 ‘오늘은 편의점 도시락 뭐 먹지, 오늘은 무슨 김밥 사서 강의실 들어가지,
연구수업 마감 언제까지였지’ 같은 생각을 하며 보내야 할까.
'다들 잘만 하는 것 같은 연애와 결혼을, 왜 나는 늘 서툴까.'
이 질문이 머릿속에 맴도는 순간, 라테잔 속 우유 거품이 내 기분처럼 탁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저 웃었다.
그 웃음이 자꾸 내 감정을 덮으려는 테이프처럼, 얇고 끈적했다.
무미건조한 대화들이 오가고, 커피를 다 마셔서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은 타이밍.
하지만 나는 피곤했고, 집에 빨리 가서 잠옷차림으로 영화 보며 치킨에 맥주나 마시고 싶었다.
“내일 월요일이라,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 국밥 한 끼 해요”
나는 활짝 웃으며 예의 바른 거짓말을 던지고 돌아섰다.
도산대로 한복판에서 카카오택시 앱을 켰다.
“이놈의 소개팅은 맨날 망하네.
오늘도 망했어요~ 오늘도 망했어~
집에 가서 치맥이나 먹어야지 어휴,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우울한 마음에 가방 안에서 초콜렛 쿠키를 꺼내 입에 넣었다.
초콜릿 쿠키가 입 안에서 천천히 녹는 동안에도
내 소개팅은 왜 맨날 이모양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운도 안 따라 주는 날이었다.
택시가 안 잡혀서 결국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 창 밖을 보며 초콜렛 쿠키를 한 봉지 다 먹었지만
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렀다.
맥주 네 캔, 컵라면 하나, 그리고 치킨 주문.
마치 소개팅에 실패한 자를 위한 나만의 풀세트 위로 키트.
집에 도착해 바지를 벗고, 브라를 풀고, 단정하게 올려 묶은 머리를 풀자 '진짜' 내가 나타났다.
치킨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고 있고, 라면 물이 끓는 동안 맥주를 따랐다.
거품이 올라오는 게, 오늘 하루 내가 쌓은 짜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뭐, 진한 국물 없이도 사람은 살아간다.
국밥 못 먹는 여자도 살아 있고, 소주 못 마셔도 연애는 언젠간 또 올지도 모른다.
배달받은 치킨을 받자마자 나는 소파에 털썩 앉아 컵라면의 첫 젓가락을 집었다.
“아~주 잘 익었어.
김지은. 오늘도 인생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 말은,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