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팬 데 믹
5장. 팬 데 믹
그런 평온함은 밴쿠버에 도착한 지 15일째 되는. 딱 그날 일요일 밤까지 만이었다.
내일 학교 갈 가방을 싸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같은 반 터키 친구였다.
– 지유, 학교 앱 봤어? 내일부터 학교 닫는대.
나는 폰을 들여다보며 혼잣말했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학교를 왜 닫아…’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 학교 문을 닫는다고?
– 응. 코로나 터졌어. 학교 수업 전면 중단이래.
나는 답장하지 못했다. TV를 켰다.
뉴스에서는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었다.
‘아니 무슨 코로나라고 학교 문을 닫아? 아이고~ 캐네디언들아, 한국에선 코로나로 난리여도 다들 마스크 쓰고 정상 등교, 정상 출근 한단다’
다음 날 아침.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마음에 직접 학교에 갔다.
철문에는 A4용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Closed until further notice.”
나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 진짜…네.”
캠퍼스는 텅 비어 있었다. 햇살도, 공기도, 다 조용했다. 그 한가운데에 나 혼자 서 있었다.
'학교가방 싸들고 열심히 왔는데....'
황당한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 나온 김에 장이나 봐서 가자, 집에 먹을 게 없지 참.’
충격을 뒤로한 채, 일단 장이라도 보자 싶어 로컬 대형 마트를 향하는 길, 이상하게 오전 10시에 길거리엔 지금 한창 일해야 할 것 같은 정장차림의 사람들이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고, 다들 손에는 화장실 휴지 대량 묶음이 들려있었다.
'왜 다들 집에 가는 분위기지? 왜 다들 화장실 휴지를 들고있지?'
열심히 걸어서 도착한 대형 마트에 들어선 나는. 카트 손잡이를 잡은 채 한동안 멍하니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봐야 했다.
"뭐지... 영화 찍나?”
하지만 몇초가 흐른 후, 그곳에서 나는, 내가 '실재 재난 영화 속 등장인물' 이라는 걸 실감했다.
“뭐, 뭐야, 이게…”
방독면을 쓴 남자. 비닐장갑 낀 엄마들. 아이를 업은 채 미친 듯이 카트에 물을 쓸어 담는 가족들.
어제 까지만 해도 꽉 차 있던 식재료 선반은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쇼핑 카트 손잡이를 꼭 쥔채, 마트 한가운데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게 현실이라고?’
‘저, 저기요… 다 쓸어 담아가면 어떻게 해.... 너네는 집에 먹을 게 있겠지만 나는 하나도 없다고’
텅텅 빈 매대를 돌고 돌은 나는 간신히 옥수수 통조림 한캔 과, 감자칩 하나를 결제해서 나왔다.
'빵도 사고싶고...과일도 사고싶었는데...'
그날 오전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
식량보다 더 충격적인 건… 화장실 휴지였다.
그 어디에도 없었고, 하나도 없었다. 선반 위에 “SOLD OUT” 종이만 붙어 있었고, 직원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Sorry, maybe next week…”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는 당장 지금 당장 쓸 휴지가 정말로 하나도 없다고!’
화장실 휴지를 찾아 동네 마트를 다 돌고, 결국 쉐어하우스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혹시… 너네 화장실 휴지 남는 거 있어?” 그 친구는 잠시 당황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하나 남은 거 줄게. 대신 너 나중에 라면 줘야 돼.”
“라면이랑 바꿀 수 있다면… 오케이, 딜.” 그렇게 나는 1 롤을 얻었다.
그 작은 휴지 한 롤을 양손에 들고,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되었군.”
***
이틀 후, 모두가 처음 하는 온라인 수업은 모두가 서툴렀고, 선생님도 버벅 대며 모든 문제 상황에 직접 부딪혀 가며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방법을 서로 배워갔다.
***
문제 투성이었던 뒤죽박죽 온라인 수업이 매끄러워지기 시작할 때쯤, 쉐어하우스에 하나둘 이삿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룸메이트들이 한국으로 간다고 했다.
“진짜? 한국 가?”
“응, 엄마가 돌아 오래. 비행기표 겨우 구했어. 한국 들어가는 편도가 3000불이다 3000불... 미쳤어”
“나도 이번 주말에 나가. 지금 일도 못하고, 학교도 못 가고, 어차피 온라인 수업 할 거면 여기 비싼 렌트비 내면서 있을 필요 없잖아.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집에 있는 것 밖에 없고…”
시간이 흐르며 쉐어하우스의 다른 룸메이트들도 하나 둘 한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룸메이트가 이야기했다
“지유 언니, 저 다음 주에 한국 가요.”
그 말에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진짜…? 너도?”
“네… 워홀 온건데 알바도 끊기고…집에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게 없어요.”
“…그렇지….”
“언니는 안 가요?”
나는 잠시 창밖을 봤다.
“나? 아직은… 버텨보려고.”
***
깨끗한 집으로 이사를 한지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나 빼고 모두가 다 한국으로 돌아간단다. 집주인도 바뀔 예정이었다. ‘어휴, 또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하네 ‘
학교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외국인 친구들은 다 본국으로 돌아가고, TESOL 수업을 계속 듣고자 남은 학생은 ‘오직, 나 하나’ 뿐이었다. 수업은 들을 학생이 없어서 폐강이고, 시험은 영국에서 시험지가 비행기를 탈 수가 없어서 무기한 취소였다.
모두가 떠나고 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많은 걸 감내했는데,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렇게 혼자 남아, 누구도 만나지 않는 일상이 시작됐다. 밖에 나가는 건 오직 장을 보거나 짧게 산책할 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