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Days Of Summer In Canada_6

6장. 병원

by 김지유

6장. 병원


그렇게 외롭게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왼쪽 눈이 충혈됐다. 혈관이 터진 건 아니었지만, 기분 나쁘게 충혈되어 있었다.

잘 자면 괜찮겠지 싶었지만, 그 충혈은 점점 심해졌다. 며칠이 지나니 눈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건. 병원을 가야 된다.'


엄마가 25년 차 베테랑 간호사셨지만 걱정하실 까봐 엄마에게 내 눈의 증상을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은 문을 다 닫았다고 들었는데, 병원을 어떻게 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안과 의사를 만나려면 먼저 워크인 클리닉에 가서 진료를 받고,


거기서 의사가 소견서를 써줘야 안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뭐 이런 거지 같은 절차가 다 있어... 한국엔 널린 게 안과 의원인데...'



어쩔 수 없이 집 근처 워크인 클리닉에 전화를 했고, 직원과 몇 차례의 복잡한 통화 끝에 의사를 온라인으로 연결했다.



코로나가 터진 직후라, 집에서 쉬던 의사도 온라인 진료가 처음인 것처럼 보였다. 잠옷차림인 그 의사의 집 와이파이 상태가 좋지 않은지 계속 영상통화가 끊겼다.

짜증이 났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와이파이가 잘 안 될 일이 없었고, 영상통화가 끊길 리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의사에게 내 모든 증상을 설명하고 카메라로 내 눈을 보여주니,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각한 안구 염증처럼 보여. 지금 당장 소견서를 써줄 테니 빨리 가까운 응급실로 가. 다운타운에 종합병원 제일 큰 데로 가"

나는 그렇게 실제 의사는 만나 보지도 못한 채, 워크인 클리닉에 가서 800불 주고 직원이 건네주는 소견서를 받았다.


'이 종이 한 장이 800불이라고...?'


***


의사가 얘기해 준 다운타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코로나 터지기 전에 병원 앞을 지나가면서 ‘어머~ 캐나다는 병원 건물도 고풍스럽고 멋지다’ 고 생각했는데

여길 내가 환자로 올 줄이야 …..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아주 멀찌감치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혹시 내 눈이 잘못되는 건 아닌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한국은 응급실 가면 의사가 바로 오는데 여기 의사는 함흥차사네 함흥차사야....'


***


무려 두 시간 사십 분을 기다려 만난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황당하게 했다.


"우리 병원은 코로나 때문에 안과 진료를 다 중단했어요. 그래서 지금 안과 진료 못 봐요."


"네?"나는 종이를 당차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워크인 클리닉 의사가 여기로 가라고 해서 여기 온 건데. 소견서도 받아왔어요"



"네 그렇지만 유감이에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안과 진료는 안보는 상태이고, 당신의 눈이 꽤나 심각한 거 같으니까 내가 소견서를 써줄게요. 더 큰 병원 가세요. 밴쿠버 제너럴 병원으로"


‘아니. 다운타운에 병원이 이거 하난데 또 다른 병원을 가라고?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눈만 보이니까, 나는 최대한 애처로운 눈으로 의사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그 워크인 클리닉 의사가 심각한 안구 염증이라고 했어요. 그냥 여기서 안약 처방해 주면 되잖아요, 내가 왜 또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죠?”


알 수 없는 빠른 영어가 이어졌고, 뭐라고 하는지는 이해했지만 원어민처럼 영어 못하는 나는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꾹 참았다.


"제일 빠른 예약을 잡았으니, 3일 뒤에 밴쿠버 제너럴 병원으로 가서 안과 의사를 만나세요."


'3일?! 제일 빠른 예약이 3시간 뒤가 아니라 3일 뒤라고?'

나는 터덜터덜 병원을 나오며 중얼거렸다.

“진짜 환장하네… 눈이 아프다고!!! 그냥 안약 처방해 주면 될 일을!!! 3일을 더 기다려서, 다른 병원을 가라고?”



***


3일을 기다리는 동안 내 눈알은 점점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진통제를 다 털어 시간 맞춰 먹어가면서 위장이 아파올 즈음, 나는 밴쿠버 제너럴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은 왜 이렇게 불편한지, 구글 지도를 켜고 아픈 눈을 손으로 눌러가며 겨우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건물 안에 들어가는 절차는 또 왜 이렇게 복잡한지, 병원 밖에 서서 서류를 보여주고 한 사람씩 시간을 맞춰서 들어가야 했다.


예약 시간이 9시였는데 11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병원 안을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이면 30분도 안 걸려 다 해결될 일을… 안과 가겠다고 1주일을 병을 키우네… 이게 무슨 고생이야.’


답답한 마음에 미치도록 화가 나서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 참고 기다렸다.

의사는 나에게 빠른 영어로 설명을 쏟아내더니, 눈 안쪽 염증이 심하다고 안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수납을 하려는데, 의사 10분 만난 값이 1000불이 나왔다. 유학생이라 MSP(의료보험)가 없어서 그렇단다.


한국이면 5000원이면 됐을 텐데…..


카드 결제를 하려고 했는데, 간호사가 카드 결제는 안 된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병원이 카드 결제가 안돼? 수납 창구도 없다.


그냥 간호사한테 직접 계산하는 거야. 근데 카드 결제가 불가능해?


처음엔 도저히 상황이 이해가 안 됐지만 캐나다 의료 시스템을 생각해 봤다.


‘그렇지 캐나다는 자국민에게 병원비가 공짜니까. 결제할 일이 없겠지.’


욕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어디다가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간호사가 ATM 기기를 찾아가라고 알려줬는데, 그 ATM 기기는 이 큰 병원, 다른 건물의 어디엔가 있었다.



쥐 죽은 듯 아무도 없는 병원 병동 건물들을 걸어 다니며, 문이 다 닫히고 불 다 꺼진 건물들에서 '사람의 존재'가 보일 때마다 길을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구걸하듯 ATM기에 가서 1000불을 뽑고, 다시 먼 길을 돌고 돌아가서 간호사에게 돈을 건넸다.


"자... 여기 1000불"

"응, 이거 들고 약국 가. 약국은 두 블록 걸어가면 있어"

"약값도 지금 낸 비용에 포함이야?"

"아니. 안약 2개 처방이니까 한... 80불쯤 거기서 결제해"


처방전을 받았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너무 속이 상했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서러움이었다.


병원 건물을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 한 명의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일하는 중이지.”

펑하고 울음이 터졌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목소리.


“어디야, 왜 그래?”


“나 병원인데…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오빠밖에 없어서 전화했어… 한국이면 30분도 안 걸릴 일들을… 일주일 반이나 걸려서 의사 만났는데... 눈은 아프고… 병원비는 1000불을 내고…흐어어어엉”


"위치 찍어. 지금 갈게"


단어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남들이 보든지 말든지 목놓아 엉엉 울었다.

서른세 살이나 먹고,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지만 다 울고 나서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집 룸메이트 중 한 명이 차를 타고 등장했다.

히어로처럼 나타나서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너 우는소리 듣고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여기 살면 원래 그렇대… 힘내”


“고마워 오빠…. 영웅 같네…”


그 고마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잠시나마 나에게 유일한 기댈 곳이 되어준 그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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