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Days Of Summer In Canada_8

8장. 마지막 기회니까

by 김지유

“야, 너 아직도 거기 있어? 마스크도 없는데 어떻게 밖에 나가?”

여긴 마스크 쓸생각을 못하나봐.. 지금 집 밖에 못 나가…”

“너 캐나다 주소 불러봐 봐. 내가 마스크 보내줄게.”


북미 뉴스를 볼 때마다 친구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뉴스 속에는 캐나다, 미국에서 급히 귀국하는 유학생들의 인터뷰가 실시간으로 쏟아졌고,
친구들은 나에게 물었다. 한국에 안 돌아오냐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폰을 손에 든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유학 기회니까.’

말하지 않았지만, 나만의 확신이었다.


***


어느 날은 날씨가 정말 맑았다.
밴쿠버의 하늘은 유난히 투명했지만,
그 투명함이 괜히 얄미웠다.

‘세상은 이렇게 멀쩡한데, 왜 내 안만 이렇게 무너지고 있지.
엄마, 아빠, 름름이도 너무 보고 싶다…’

햇살이 쏟아지는 골목을 걷다가,
“한국에 안 돌아가고 여기에 있는 게 과연 가치 있는 걸까…”

그리고 어느 순간,
백내장 때문에 빛에 눈이 부셔 반쯤 감긴 눈 사이로
건물 벽에 비친 내 그림자가 보였다.

흔들리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똑바로 서 있었다.


어느 날 밤, 내 상황을 알고 있던 한국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야… 너 진짜 대단하다. 나였으면 진작에 돌아갔을 것 같아.”

나는 웃었다.

“대단한 거 아냐. 그냥… 여기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속으로는 생각했다.


‘근데 뭐가 남을까. 자격증을 딸 수나 있을까.
지금 여기가 좋은데… 돌아가야 할까?’

창밖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말했다.

“남는 거? 아마… 내 삶에 대한 책임감?”

내가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낸 말이었다.

이상하게, 말하고 나니 조금 편안해졌다.



밴쿠버의 봄은 어느새 무르익고 있었다.
나무는 묵묵히 잎을 틔우고 있었고,
멈춰 있는 것 같던 나의 시간 속에서도 계절은 흘러가고 있었다.

책상 위에 있는 일기장을 펼쳤다.



2020년 4월 20일.

그저 내가 잘 지내면 된다.

하루의 소중함을 온전히 느끼며 하루를 잘 살아가면 된다.
지금 내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않는 중이라고 해서 내가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수록 더욱 빛나자.


그날의 나는 약했다.
외로움에 취해 있었고,
사람들로부터 벗어난 존재라는 허무함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문장을 썼다는 건,
어쩌면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몸짓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결과는 만들자.”


그 작은 다짐이, 나를 다시 하루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밴쿠버의 6월은 꽃으로 가득했다.
창밖을 열면 바로 보이는 풍경.
집집마다 서로 경쟁하듯 피운 꽃들이 골목을 물들이고 있었다.

장미, 라벤더, 이름 모를 들꽃들까지.
이 도시의 사람들은 마치 말 대신 꽃으로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그날도 나는, 고요하게 걷고 있었다.
남의 집 앞마당을 무심히 지나치면서.

그때—
마음속 어딘가가, 갑자기 댕, 하고 울렸다.


‘힘내라, 김지유.
지나가는 길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너를 응원해.’

한국에 있을 때,
힘들고 숨 막히는 날마다 내가 스스로에게 속삭였던 말이었다.

수국 옆을 지나며 다시 떠오른 그 말이
그날따라 진짜 누군가의 응원처럼 들렸다.

그 순간은,
그저 평범한 하루였지만…
내게는 삶의 속도가 달라지는 터닝 포인트였다.


서울에서라면,
‘목숨처럼’ 들고 다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숨 가쁘게 뛰어다녔을 테지만

지금 나는
누군가의 앞마당을 지나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의 향을 느끼고 있었다.

뜨겁고, 느리고, 고요한 그것이
내 마음을 천천히 데우고 있었다.

밴쿠버에 남아 있는 건,
어쩌면 무모함과 패기의 경계 어딘가에 선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국경이 닫힌 나라에 혼자 남아 있는 것.
가족도, 친구도, 친척도 아무도 없이.

남들 눈엔 무모해 보였을지 몰라도
나에겐 이 모든 선택이
‘해내보자’는 절실함이었다.


3월, 세상이 멈춘 이후로
내가 준비하던 시험은 모두 전면 취소됐다.
TESOL 수업은 신청자가 나 혼자라 폐강.
학교는 문을 닫았고, 다들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존버’ 정신 하나로
ESL 수업이라도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유학일 테니까.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쉽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내 안에 남아 있는 긍정의 전부를 끌어올려
그냥 하루를, 또 하루를 살아냈다.

말하자면,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던 셈이다.

공부할 게 더 이상 없다면
그땐 돌아가겠지만,
이대로는 못 간다.
나는, 이 시간과 나 자신에게 책임을 지고 돌아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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