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낯선 인연
10장. 낯선 인연
어느 날,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갑자기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보다 몇 살 많은, 선량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셨어요?”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우리는 서로 반가운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대화는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연락하며,
함께 마트에서 장도 보고, 드라이브도 다니고,
가끔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웃으며 이야기했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화가 통하고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
또 다른 날, 학교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이
'밴쿠버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구경하자'며 여행을 제안했다.
비록 시국이 어러웠지만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조심스럽게 다녔다.
밴쿠버의 숲에서 하이킹을 하기도 하고,
바다 근처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여행이란 단지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 소중한 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걸.
해변에서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을 때였다.
일몰의 빛이 바다 위에 퍼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고민과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낯선 도시,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많은 도전과 변화를 감당하고 있는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서 하고자 했던 일들,
결국 내 삶의 작은 기쁨들이 모여
나를 변화시키는 것 같다. 더 용감하게, 더 씩씩하게’
그렇게 여행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몇 달이 흘러
나는 1차 TESOL 수업을 마쳤다.
고립되어 있던 시간 동안,
스스로를 이끌며 학업을 이어갔고
이 과정을 끝냈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게 작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온라인 수업을 듣던 동안,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서로에게 응원을 보내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지유, 너랑 같이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어. 과제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
“아니야. 나도 너희들이랑 같이 공부해서 좋았어.”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네 없었으면 나 진작에 포기했을 거야.”
“진짜 나도 그랬어.
우리가 매일 줌 수업 끝나고 단톡방에서 ‘죽겠다’ ‘못 하겠다’이런 얘기 안 했으면 못 버텼을걸?”
다른 친구가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맞아. ‘죽겠다’는 말도 같이 하니까 덜 죽을 것 같았어.”
모두 웃었다.
그 웃음이 그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그땐 처음 알았다.
외로움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 외로움을 함께 견뎌낸 사람들과의 추억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렇게 지내던 여름,
나는 외국인 친구들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낯선 도시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만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팬데믹 직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언어교환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Minoo였다.
그녀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길게 늘어뜨린 귀걸이, 당당한 말투, 시선을 끄는 손짓.
페르시안 특유의 화려함과 인플루언서 같은 자신감이 동시에 묻어나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 달리, 그녀는 내게 따뜻하고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단 몇 분의 대화였지만 우리는 서로 잘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너 처음 봤는데... 한국에서 왔어?”
“응. 며칠 전에 왔어.”
“진짜? 나 한국 영화 좋아해. <기생충> 봤어?”
“당연하지! 그 영화 아카데미에서 상도 받았어!.”
“나도! 그 영화 진짜 최고였어. 나 K pop도 좋아해! 지유, 너한테 다른 한국사람들에게 느끼지 못한 좋은 기운이 있어. 언제 같이 hangingout 할래?”
"응? 응 좋아, 너무 좋아"
내가 수줍게 웃자, 그녀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 도시에 오래 있으면 알아. 진짜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야.”
“응…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그날 이후로 우리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고, 그녀는 나를 데리고 트레킹도, 쇼핑도 다녔다.
그리고 Minoo는 가족이나 절친만 부른다는 홈파티에 나를 꼭꼭 초대하곤 했다.
그녀의 파티장엔 항상,
**나만 ‘Only one Asian girl’**이었다.
그리고 그 파티의 불빛 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인연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