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Days Of Summer In Canada11

11장. 라쿤

by 김지유

11장. 라쿤


Minoo의 홈파티는 여느 때처럼 활기찼다.
진한 와인 향과 웃음소리, 그리고 쉴 새 없이 흐르는 페르시안 음악. 춤추고 대화를 즐기는 이라니안, 백인들 사이에서 나는 그날도 only Asian girl이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마저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조금은 낯선 나라의 파티, 조금은 낯선 나 자신.

파티가 슬슬 끝날 무렵,
Minoo가 나에게 다가왔다.


지유,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지금 혼자 나가기엔 너무 늦었어.”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냐, 괜찮아.
한국에서 예고 없이 남의 집에서 자는 건… 큰 실례야.

그녀는 장난스러운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엔 진짜 자고 가야 해. 약속.”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세 시.
도시는 숨을 죽인 듯 고요했고,
바람은 선선했고 정신은 또렷했다.

아무도 없는 골목을 혼자 걸으며
나는 조용히 밴쿠버의 여름밤 냄새를 즐겼다.


그리고—

우리 집 현관 앞.
딱 그 자리에서.
작고 둥글고, 다소 의외의 존재와 눈이 딱 마주쳤다.


정면 1미터.


그것은…

라쿤이었다.


그것도, 무슨 인형 같은 라쿤이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생생한,
그리고 다소 당황한 표정의 그 라쿤.

서로 동시에 멈췄다.
나도,
그 라쿤도.


3초쯤, 아주 정중한 침묵이 흘렀다.


‘…어머, 너 여기서 뭐 하니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이건…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지’

나는 정신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려했고,


그 순간 라쿤은 나를 한번 빤히 쳐다보더니
“나도 놀랐어. 진심이야”
—라는 표정을 짓고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나를 스쳐 지나쳐갔다.

통통통 무심하게 걸어가는 그 뒷모습이 어찌나 느긋하고 당당하던지,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났다.


‘아니 진짜…
나 지금 동물원 아니고
집 앞이거든…?’


그 장면은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섭지도, 귀엽지도 않은 이상한 기억.

하지만 왠지 그날 밤,
라쿤과 마주친 것도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이 도시가 내게 주는 건 언제나 같았다.
예고 없는 놀라움.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내가 살아 있다는 실감.


밴쿠버에 산다는 건 새벽 세시에 집 앞에서 라쿤을 만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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