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들
13장.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들
“이번 주말에 휘슬러 갈래? 차 빌렸어.”
친구가 갑자기 툭 던지듯 말했다.
나는 망설였다.
“휘슬러? 스키장 있는데 잖아. 지금 시즌 아니지 않아?”
“그냥 드라이브라도 해. 아무 생각 없이, 바람 쐬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내 마음은 그곳에 있었다.
짐을 꾸릴 새도 없이, 토요일 아침 우리는 차를 몰고 북쪽으로 달렸다.
휘슬러로 향하는 길.
창밖은 그림처럼 펼쳐지는 숲과 산, 하늘.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 숲의 초록은
오랜만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했다.
도착한 곳에는 우리의 예상대로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코로나가 도대체 세상을 얼마나 많이 바꾸어 놓은 걸까. 내 기억 속에 13년 전의 여긴 여름에도 사람들 북적이는 관광명소였는데 ‘
사람도, 상점도, 시끄러운 음악도 없이 진짜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게 더 좋았다.
고요하게 남은 산들과
사방에 퍼진 숲 냄새,
그리고 나.
“와… 진짜 이런 데도 있구나.”
“여기선 시간도 느려.”
“그래서… 조금 살 수 있는 것 같아.”
서로 말없이 걷다가,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앉았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렸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무언가 가 천천히 내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
‘살고 있구나… 나. 살아있네”
***
일요일엔, 로컬 야시장도 다녀왔다.
물론 방역 때문에 많은 부스가 닫혀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사람들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이거 뭐예요?”
“사과 시럽이에요. 직접 농장에서 만든 거예요.”
“와, 달아요?”
“직접 맛보면 더 달아요.”
나는 깨달았다.
어느 순간 영어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어색하지만, 피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 나오지 않던 그때와는 달랐다.
“너 영어 진짜 많이 늘었어.”
친구가 말했을 때 나는 웃었다.
말을 배운다는 건,
결국 세상을 더 가까이 이해하는 일이라는 걸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
비가 오던 어느 날엔,
우산도 없이 스탠리 파크를 걸었다.
“야, 너 로컬이야?
무슨 한국애가 우산도 안 쓰고 다녀?”
“여기 비는 깨끗하잖아.
비 맞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
너 서울 미세먼지 심할 때 비 오면, 비가 얼마나 더러운지 모르지?
상상도 못 할 거다.”
쏟아지는 빗물 사이로
다람쥐 한 마리가 도토리를 물고
머리 위 나뭇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나는 다람쥐를 따라 뛰었고,
우산도 없이 그 장면을 끝까지 지켜봤다.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보면 미친 사람인 줄 알았겠지만—
그날 나는, 이상하리만치 행복했다.
‘지금이 바로, 살아있는 시간 같아.’
그렇게, 나는 이 도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익숙해진다는 건 곧 사랑하게 되는 일.
나는 그걸, 조용히 배우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