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까마귀
4장. 까마귀
1박 2일 동안 공항에서 나는 얼마나 고생을 한걸까.
밴쿠버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2박 3일 내내. 방안에서 혼자 죽을고비를 넘겨가는 환자처럼 고열과 온몸의 통증, 식은땀과 오한에 벌벌 떨며 방 밖에 나오지 못했다.
룸메이트들은 '내가 집을 나가 도망간줄 ' 알았단다.
"어머 언니, 몇일만에 뵈요, 어디 여행 다녀오셨어요?"
"하하하...방에 있었어요..."
"에? 너무 조용하고, 불도 맨날 꺼져있던데요?"
....
그렇게 몸살 한번 호되게 치르며 신고식을 한 밴쿠버 생활에 나는 조금씩 적응을 시작했다.
시차도 조금씩 맞아가고, 마트 위치도 익혔고, 학교도 찾아가 돌아보았다.
'오, 저 강의실이 내가 수업 들으러 갈 곳이구나...'
긴장감과 낯섦, 외로움이 교차하는 순간들이었지만, 마음 한편엔 그래도 내가 Right track에 있다는 안도감이 조금씩 피어났다.
'좋아, 이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수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비록 over 30 class에 한국인은 나 혼자였지만,
같은 반 외국인 친구들과 수업 후 커피도 마시고, 서툰 영어지만 서로 웃으며 대화했다.
“Where are you from?”
“Korea. You?”
“Brazil!”
“Nice to meet you!”
나는 환하게 웃었다.
***
어느 날은 날씨가 좋아서 집 근처 한인마트에서 장보고 집에 걸어가는 길이었다.
정말, 인생은 항상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갑자기 뭔가가 내 머리를 퍽 하고 쳤다.
“꺄아아악!! “ 하고 너무 놀라 뒤를 돌아봤는데 뒤에는 아무도 없고 내 머리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갔다.
“까마귀가…?”
맞다. 까마귀가. 진짜 내 머리를 정확히—그것도 망설임 없이!—“퍽!” 하고 쳤다.
나는 너무 놀라서 거의 숨이 멎을 뻔했다.
뒤늦게 “아! 뭐야!!!” 소리를 질렀지만, 그 새까만 범인은 이미 고층 빌딩 숲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도 없던 길 한복판, 생전 처음 까마귀한테 정통으로 공격당한 나는 민망함은 둘째치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까마귀한테 맞을 정도로 어리숙해 보였단 말이야?’
까마귀는 워낙 영리해서 남자, 여자, 아이, 노인을 구별한다고 했다. 반드시 아이나 여자, 노인만 공격한다고. 기분 나쁜 건 둘째 치고, 까마귀조차 나를 약한 캐릭터로 본 거 같아서 괜히 억울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장을 볼 때마다,
까마귀를 경계하며 건물 쪽에 바짝 붙어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그 이후로 까마귀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새가 되었다.
밴쿠버의 야생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본능적이었다.
***
학교 가고, 과제하고, 안정적인 생활이 반복됐다. 룸메이트들 과도 제법 가까워졌다.
우리 반에 한국인 학생이 나 혼자여서 외로웠던 찰나,
새로운 클래스메이트가 등장했다.
오전 수업 중간 즈음 새로운 학생이 온다며 한쌍의 커플이 교실에 들어섰다. 나는 그들을 한눈에 알아봤다.
'저 분들은 반드시 두 분다 영어선생님이야'
무척이나 반가웠고,
'같은 반에 한국인 클래스 메이트가 생겼어!' 라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