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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Feb 22. 2018

리틀 포레스트

향긋한 봄 내음이 불어온다



리틀 포레스트 / 2018 / 한국


감독 : 임순례

출연 :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문소리 등


 

내게 새해는 3월이다. 따갑게 두 볼을 때리던 바람이 어느새 풀 향을 가득 머금고 따뜻하게 느껴질 때, 되는 일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뜰 때, 따뜻한 라떼보다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생각날 때. 여기저기서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때 진짜 새해가 시작되는 것만 같다.


올해는 임순례 감독의 <리틀포레스트>를 보고 나서 새해를 느꼈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맛난 요리들, 화면 위에 펼쳐진 푸른 풍경과 귀를 간질이는 자연의 소리들이 영화관 밖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 이하내용은 영화 스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혜원이 고향의 집으로 내려오며 시작한다. 혜원은 실패를 맛본 아이다.

1년간 남자친구와 함께 열심히 준비했던 임용고시도 떨어지고,덩달아 연애도 끝이 보인다. 나만 뒤쳐지는 것만 같은 상황에서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까지 엄마와 살던 집을 찾는다. 사실 집은 좋은 기억만 있는 곳이 아니다. 창의적인 요리로 혜원을 행복하게 해주던 엄마는 혜원이 수능을 본 며칠 뒤 메모 한 장만 부엌에 남겨두고 집을 떠났다.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혜원은 요리를 하며 적막함만 감도는 집을 따뜻하게 데운다. 꽁꽁 언 밭에 숨겨진 배추를 따고, 장작을 패며 만든 따끈한 배춧국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녀가 고향에 돌아왔음을 알린다.





음식으로 전해지는 마음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주는 건 음식이다. 추운 계절은 배춧국과 직접 담근 막걸리를, 따뜻한 계절엔 꽃을 넣은 파스타와 시원한 콩국수를 먹음으로써 사계절을 보여준다. 가만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자면 영화가 아닌 요리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도 든다. 여백이 자연스러운 클로즈업 샷과 포근한 사운드를 통해 오감이 채워진다.


계절뿐만 아니라 혜원의 삶도 음식으로 연결된다. 대학 등록금과 임용고시 학원비를 벌기 위해 혜원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유통기한이 지나 쉰내가 나는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 영화 후반부, 자신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낸 혜원은 더 이상 편의점 음식을 먹지 않는다. 정성스러운 새싹 비빔밥을 파는 가게에서 일하고 제대로 된 집밥을 먹는 혜원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삶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엄마와의 기억 또한 음식을 통해 되살아난다. 가을을 위한 곶감을 만들 때, 추운 바람과 함께 마셔야 제 격인 막걸리를 만들 때, 은숙과 화해하기 위해 크림 브륄레를 만들 때. 그리고 엄마에게 처음으로 답장을 쓸 때.

혜원은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를 떠올린다. 친구 은숙은 혜원이 자존심 때문에 엄마를 찾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혜원은 음식 하나 하나를 만들 때마다 엄마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엄마가 개발한 음식인줄 알았던 오꼬노미야끼를 푸드트럭에서 발견했을 때 깊은 배신감을 느끼는 장면에선 깨알 웃음이 나기도 한다.





쉬어가도 괜찮은 곳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능 <윤식당>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소한 행복을 얻듯, <리틀 포레스트>도 맛나 보이는 음식과 계절을 기깔나게 맞추면서 힐링을 준다. 쨍쨍한 여름 햇빛, 벼가 익어가는 황금들판, 흰 눈이 쌓인 시골 동네를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해진다. 친구 재하가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귀농한 이유도 같다.

영화는 인물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단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주인공 혜원의 삶을 보는 것보단 그저 다큐멘터리 한 편을 관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갑자기 배신하지 않을까, 반전이 있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보지 않아도 된다. 그저 봄-여름-가을-겨울의 시골 풍경을 감상하면 된다. 자연이 변화하는 마음을 편하게 쉬며 볼 수 있다는 점이 <리틀 포레스트>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재하가 언제 혜원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할지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은행을 나온 은숙이 더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을지, 혜원이가 이번에는 임용고시를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은 한번쯤, 혹은 여러 번 쉬어도 괜찮은 곳이니까.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졸려서 잠을 자야겠다던 동생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저렇게 돌아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정신 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잃어버린 게 더 많은 것만 같은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는 혜원처럼 ‘작은 숲’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꼭 자연이 아니더라도, 조용히 쉬며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든다면 혜원처럼 감자빵을더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을까?


아직 작은 숲을 만들 여유 조차 없다고 느껴진다면 <리틀 포레스트>를 추천한다. 살살 불어오는 봄 내음을 맡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물론, 나만의 작은 숲에 어울리는 메뉴는 뭘까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 <리틀 포레스트>는 2월 28일 개봉합니다.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볼 기회를 주신 브런치 팀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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