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보다 앞선 안전함

나는 여전하지만, 여전하여서

by 지하경

요즘은 ‘좋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노상하는 생각들 틈틈에 ‘좋은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고, 그 질문은 곧바로 나를 향한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아닐까.
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대답은 쉬이 모이지 않는다. 긍정이었다가 부정이었다가, 생각들은 깜박깜박 요란하게 점멸한다. 그러다 어렴풋이 찾아낸 좋은 사람의 첫 번째 기준은, ‘안전한가’였다.

‘안전하다’는 말은, 내게 ‘좋은 사람’을 결정짓는 첫 번째 전제조건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아무 때고, 내가 까맣고 시들한 상태이거나, 낯선 모습일지라도 무슨 이야기를 꺼내 들어도 괜찮은지, 그 사람 앞에서 안전한 지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척도가 된다.

앞선 문장에 ‘~같다’라는 표현을 붙인 이유는,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정의를 지금의 상태 그대로 정리해 보고 싶어서였다. 완전하지 않은, 그래서 짐짓 심약해 보일 수 있는 아주 내밀한 감정과 고백들로 가득 찬 내 문장들, 혹은 나 자신은 언제나 조심스럽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자칫 스스로가, 혹은 나로 인해 타인이 상처받을까 겁이 날 때마다 속으로 읊조리고 허공에 그려낸 무언을 이렇게 문장으로 구현해 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속 아무 데고 팽개쳐 먼지에 구르고, 구석에 처박히거나 구겨진 채로 방치되던 생각들. 이 모두는 어딘가에 닿고, 누군가에게 읽힌 뒤에야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그 종착지는 안전함에 부합해야만 거리낌 없이, 혹은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판단하는 기준과 내 글의 종착지가 동일하게 ‘안전하다’라는 척도로 귀결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일지 모르겠다. 하물며 글 뒤에 숨어 날 선 방어태세를 갖춘 연약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일 테니까.

모호하고 애잔하며 복잡해서 결코 한 가지 색으로 구현되거나 간명히 설명될 수 없는 나는 따뜻한 커피처럼 향이 짙은 구석과 찬 커피처럼 투명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실은 그런 것이 보통의 사람들 아니던가.

보통의 사람들.
차갑기도, 뜨겁기도, 미지근하기도 한 채로 종종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보내며 텅 빈 공허함과 함께 뒤늦게 슬퍼지는 존재들.
분주함이 지나간 자리에 어중된 상태로 서글프게 머무르기도 하는 것. 후회와 미련 같은, 흔한 양태들 말이다.

삶은 언제나 의문투성이고 사람은 불안하게 흔들리며 마음은 매일 어딘지 모르게 수상하게 군다. 그럼에도 가능한 우리는 우리를 최선의 자연스러움으로 무장한 채 일상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스스로가 심약하다고 느끼지만 실은 그보다 강하다고 여기면서.

그러니 더 자주 사람들의 좋은 지점들을 알아채고, 저마다의 기준들을 척도로 삼아 자꾸만 커지는 불안을 조금은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인지 ‘좋은 사람’의 기준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소중한 사람의 곁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내가 속한 모든 사람에, 내가 안전한 사람으로 머물 수 있길 바라본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 더 좋은 사람이어야지. 더 오래 좋은 사람이어야지 다짐해 본다. 어쩌면 좋은 사람의 기준 그 두 번째는 다정한가에, 세 번째는 용기 있음에 이르게 될 것이란 짐작을 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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