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투루 버리려는 태도가 아니라 물러서는 방식으로

나는 여전하지만, 여전하여서 : 에필로그

by 지하경

하루를 망치지 않으려 괜스레 걸음을 늦추는 날들이 있다.

아주 열의와 정성으로 빚어낸 나의 하루를 완벽하게 보전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걷다 보면, 스스로에게 함부로 말 걸 수 없을 만큼 잔뜩 예민해진 상태가 된다. 결국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수 없을 지경에 닿는다. 그 모습이 타인에게는 사려 깊지 못한, 인색함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 인색함을 안은 채 홀로 터널을 지나듯 걷는 길은 외롭다. 어느 하루이기도 했고, 돌이켜보면 지난해의 풍경이기도 했다.

지난해는 혼란스러웠고, 마음이 무거운 순간들이 잦았다. 그럴 때면 나는, 나를 향한 구체적인 시선으로 냉소했다.

그래서일까, 새해 첫날 벅찬 웅장함을 넘치게 품게 하던 빨갛게 빛나던 일출을 마주하고도, 아무런 다짐도 마음속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시작하는 어떤 계획도, 결심도, 약속도, 작은 변주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해돋이를 보러 가던 길에 나눈 대화가, 그날의 풍경보다 오래 남아, 이따금 ‘참기름 향 기름’에 대한 생각을 했다.

‘참기름 향 기름’은 참기름 향을 내지만, 참기름은 아닌 기름이다. 그것은 본질을 흉내 내지만, 독립적인 가치로 존재한다. 마가린이나 무알콜 맥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기준점에 따라 선택 가능한 필요충분조건의 대체 상품이다. 그러니까, 가짜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진짜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이대로 소비되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이따금 전혀 다른 나를, 나에게서 기대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주 새로운 나를 지금까지의 나에게서 찾는 건 모순일지도 모른다.

참기름이든, 참기름 향 기름이든, 어떠한 방식으로 나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내가 그려볼 수 있는 가장 진짜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의 지향점이다. 본질의 나는, 내내 한결같을 테니 말이다.

결국 내가 바라는 변화란, 완전히 다른 삶이 아니라, 연결된 일상을 명랑하게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하지만, 여전하여서, 이런 내가 좋기도 하다고 여기면서.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인정하는 것. 스스로가 정한 기준점을 더욱 또렷이 하며 살아가는 것. 허투루 버리려는 태도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한 발짝 물러서는 방식으로.

그게, 가능한 선에서 그려볼 수 있는 가장 진짜 내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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