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단상 04. 달리기
옆에서 뛰는 사람이 전력질주를 한다. 나도 빨리 달리고 싶어진다. 속도를 높이고 싶은 충동이 인다.
트레드밀 앞 모니터는 아무 영상도 재생되지 않은 채 고요하다. 빈 화면에 반사되어 보이는 내 모습에 눈을 둔다. 가볍게 쥐고 있던 주먹을 펴 손바닥을 펼쳐 본다. 이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환기가 된다.
나는 지금 빨리 달리는 훈련을 하는 게 아니다.
꾸준히 달리기 위한 체력을 다지는 중이다.
빠른 속도보다 중요한 건, 무리 없는 유산소 상태의 유지. 끊기지 않는 속력의 연속이다.
마라톤 접수 후 시작한 연습이 4주 차에 접어들었다. 주 3회 이상을 목표로 동그란 시간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최종 목표는 1시간 10분 내 10km 완주.
지금은 그전에, 1시간을 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단계다. 숨이 고르게 끝까지 이어지는 몸. 완주 후에도 후유증이 남지 않는 몸.
현 시각 트레드밀 누적 시간은 13:07.
순조롭다.
실은 20분쯤 달린 시점에 EMERGENCY 버튼을 잘못 눌러 기기가 멈췄다. 잠깐의 강제 텀이 생겼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니 실제로는 33분째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틀 전만 해도 20분이 몸의 한계라고 느꼈다. 그 이상은 다리가 무거워지고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지금 화면은 13분 07초를 나타내고 있다. 시각이 뇌를 속이는 데 성공했는지, 다리가 가뿐하다. 시각은 뇌를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몸은 속일 수 없다. 실제로는 30분을 넘긴 몸뚱이가 땀이 뻘뻘 나며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힘들지 않게. 그렇다면 체력은 분명 올라온 것이다. 새삼 몸의 효용이 기쁘다.
모니터에 비친 나는 지쳐 보이지 않는다. 앞머리를 타고 땀이 흐르고 입술에는 작은 포진이 올라와 있다. 최근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이 상쾌하고, 다리는 가볍다.
지금 나는 속고, 속이는 달리기 중이다.
이틀 전만 해도 20분의 굴레를 넘을 날이 언젠가 오리라 믿으며 스스로를 달래며 뛰었다. 오늘은 총 50분을 무리 없이 달렸다. 10분이 적당하다고 느끼던 때를 지나, 20분이 뛸 만해지고, 이제는 50분까지.
20분쯤 끊긴 달리기는 결과적으로 전략이 되었다. 계획된 상황은 아니었지만, 성공이다.
이제는, 봄날 마라톤 D-day가 기다려진다.
운동 시작 전보다 오히려 체중이 늘었지만, 근육이 늘어난 결과라 여겨본다. 이 또한 나의 작은 속임수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몸은 속이지 못하니까.
속고 속이는 달리기, 결국 성공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