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빚은 갚지 않기로 했다

독후 단상 01. 말뚝들/김홍작가

by 지하경

내게 친구란 질문하는 사람이다.
관심으로 근황을 묻고,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
지지하거나 나무라기 위해서라도 끝내 귀를 기울이는 사람.

오래 격조했어도 교집합의 기억 하나로 금세 가까워지고,
무용한 일을 굳이 함께하고 싶은 사이.

친구는 나의 용기와 긍지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를지라도, 나는 그들에게서 자연스레 그것을 얻는다.
곁에 없어도 나를 지지하리라는 믿음,
내 기쁨에 더 기뻐하리라는 신의.

이따금 건네는 안부 한마디는 큰 위안이 된다.
그러니 친구란, 적시적소에 꺼내 쓸 수 있는
용기와 긍지의 원천이다.

스스로가 초라하고, 근사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그들의 안부와 작은 관심이 나를 다시 일으킨다.
어쩌면 그 모든 힘이 그들의 기대와 믿음 덕분일 것이다.

그들이 해낸 근사한 결과에 나는 함께 뿌듯해지고,
그들이 내 덕분이라 말할 때는 울컥하고 만다.
그럴 때면 괜한 후회와 마음의 빚이 쌓인다.

그들의 긍지에 내가 부응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기저에 있다.
이대로, 후회와 마음의 빚을 안고도
곁에 머물고만 싶다.

오래도록 품고 있던 질문이 있었다.
마음에 빚이 있어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김홍 작가의 말뚝들을 읽으며 나는 그 답을 얻었다.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말뚝들 (p.280)


나는 이 문장에서 비로소 설득되었다.

빚으로 연결된 마음, 그것이 나를 풍요롭게 한다.

그렇다면 마음에 빚이 있어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계속 근사해야지,

스스로에게 멋진 사람이어야지 다짐하게 된다.


빚은 갚아야 할 것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붙들어 두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에 빚이 많다.

그래서 부자이다.

작가의 이전글속고 속이는 달리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