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단상 06. 계절
출근길은 나무들 덕분에 예쁘다. 봄과 여름엔 꽃과 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싱그럽게 빛나고, 비가 온 뒤엔 잎사귀에 맺힌 윤슬이 반짝인다. 가을에는 눈부신 단풍이 가슴을 뛰게 하고, 겨울엔 색 바랜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다.
시선은 빈 잔디밭을 가로질러 반대쪽 끄트머리로 향한다. 바람은 아직 차지만, 햇살 덕에 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무심한 표정으로, 사소한 염려를 품은 채 겨울의 끄트머리와 초 봄의 사이를 바람과 함께 걷는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이팝나무와 벚꽃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다. 봄의 한가운데에 피어나 온 세상에 향을 실어 나르던 이팝나무 가지의 위상은 지워졌다. 봄과 여름의 초입까지 싱그럽던 꽃잎들이 꿈결처럼 희미하다. 화관을 뒤집어쓴 듯 온 세상을 사랑스럽게 탈바꿈했던 벚나무 또한.
조금의 낙엽을 아직 붙들고 있는 대왕참나무와 단풍나무. 그들의 싱그러운 계절이 기다려진다. 지금은 빈 모과나무와 매화나무의 두꺼운 가지에도 올망졸망 예쁜 꽃이 필테지.
지금의 빈 가지만으로 나무의 봄과 여름을 그려본다.
가지 모양만으로 이름을 짐작하며, 기억해 내려 애써본다. 멀리서도 나무들의 이름을 알고 싶은 소망이 인다. 그래서 겨울의 나무들에 자꾸 시선이 간다.
지금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꽃잎을 흩날리고 향기를 퍼트리고 초록의 잎으로 싱그러운 시간을 만끽하기 시작하면, 나무들의 지금을 반추해야지. 그때는 명징한 나무들의 이름을 고요히 불러보아야지.
감나무 가지가 눈에 든다. 어쩐지 웃음이 난다. 막 잠에서 깨어나 헝클어진 삼촌의 까치집 머리를 닮았다. 빈 나무의 가지가 풍성하다. 작년 가을, 예쁜 주황색 까치밥을 겨울에 닿기까지 오래도록 달고 있었다. 다정한 나무.
햇볕을 받아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의 가지 끝이 근사하다. 내가 사랑하는 여름의 초록 단풍나무들이, 겨울엔 가지 끝 수관을 붉게 물들인 채 빛이 난다.
밝은 톤의 단풍나무 수간은, 멀리서 보아도 서정적인 필터를 씌운 듯 홀로 아름답다. 나의 편애하는 나무.
해가 잘 드는 위치에 심긴 산수유나무는 늘 가장 먼저 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 마중을 나온 산수유나무에 노란 꽃봉오리가 열렸다.
멀리서 보면 나무 전체가 노랗게 물든 것처럼 보이고, 다가서면 연두이거나 연노랑의 봉오리가 맺혀 있다.
아직 봄을 만날 준비가 안 되었는데, 봄이 오려나 보다.
차고 따뜻하다, 봄과 같이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