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생일자의 변증법

나는 여전하지만, 여전하여서

by 지하경

1월에는 내 생일이 들었다. 대한을 지나고 다섯 밤쯤 자면 당도한다. ‘들었다’라고 적고 보니, 생일이 마치 주머니 속 깊숙이 감춰져 있다가 우연히 발견된 작은 물건처럼 느껴진다. 단추나, 작은 비타민처럼 사소한 것들 말이다. 나는 주변 지인들의 생일을 챙기는 것을 몹시 행복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하지만 그에 반해 내 생일을 ‘챙김 받는’ 입장은 쑥스러워 주머니 안쪽 깊숙이 숨겨둔 작은 물건처럼 감춰두고 싶어진다.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들은 메신저 창에 뜨는 생일자 목록 없이도 내 생일을 기억해 준다. (실제로 생일 알림은 꺼 두었다.) 나는 어쩐지 그 편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들 개인의 1년 중에 하루만큼은 나의 생일날로 삼아 준다는 게 말이다. 특별한 하루가 있다는 건 재밌는 일이지만, 그걸 대놓고 알리는 건 역시 쑥스럽다. 은밀하게 숨겨진 보물찾기 쪽지처럼 우연히 발견되길 바라게 되는 마음이랄까. 고약한 성미가 이렇게 발현된다.

어려서는 생일이 겨울 방학 중에 있어 불만이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내 생일이 겨울에 있어 좋다. 앞서 설명했듯 대한이 지난 얼마 뒤, 1월의 끄트머리에 든 내 생일은. 시기적으로, 나를 ‘아주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한의 끝에 입춘이 있다’는 바로 그 지점. 그 구간 안에 생일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겨울에 태어났을까? 이 아름다운 계절에!' 찬탄할 수 있는 감수성은, 겨울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특별한 계절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비 논리적이며, 내 마음속에서만 성립되는 입증 불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아무렴 어떠한가. 삶의 연속된 흐름 중에, 특별한 하루인 내 생일이 다정한 겨울에 든 것이 좋기만 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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