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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Jun 08. 2020

안녕, 싸이월드

청춘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저장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서 싸이월드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함께 보낸 싸이월드. 고등학생 때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왜 이렇게 써두었는지 모르겠다. 추측을 해야 무슨 뜻인지 알까 말까 한 함축적인 표현. 그때는 그렇게 알쏭달쏭하게 적는 것이 멋인 줄로 알고 나의 사춘기 마음을 퀴즈처럼 써두었었는데 그래도 삐딱한 마음, 속상했던 순간, 쿵쾅쿵쾅 설레었던 시간까지 글로 남겨 두려 했다는 건 나름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일랜드 시골에서의 유학 일기. 한국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부담과 외로움의 시기를 달래주었던 것이 싸이월드였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때는 스마트 폰이 없어서 내 근황을 남겨두기도 했다.


싸이월드와 작별이 가장 아쉬운 이유는 대학 졸업반쯔음에 적어두었던 일기 때문인데,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 되지 않아 참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원서를 몇 군데나 넣었을까. 열정과 패기 말고는 정말 내세울 게 없어서 이력서 한 장을 채우기가 너무 어려웠다. 적은 게 있어야 좋은 말로 고치기도 하고 예쁘게 단장해서 원서를 내고 서류 전형 통과의 기쁨이라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20대 초반의 나는 준비된 것이 없어서 자꾸만 초라해지고 슬펐던 것 같다. 이 와중 나의 친구들은 남들이 다 가고 싶다는 회사에 척척 합격해서 걱정이라곤 하나 없어 보였고 매일 나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 같아서 어깨가 자꾸 움츠려 들었다. 외국이니까 당연히 어렵다고 툴툴 털어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마음의 부담이 너무 컸다.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급했던 시절, 좋은 회사, 일류 회사만 가겠다는 럭셔리는 꿈도 꾸지 못했다. (물론 실제로는 이런 곳에 취업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다행히 나에겐 헝그리 정신은 있었다. EU 시민이 아닌 내가 어떻게 하면 잡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던 그때 무급이라도 우선 경험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은 역시 몰려온다고 했었던가. 졸업 시험을 망하면 안 되는데 자꾸만 뭘 제출하라고 했던 그 회사. 인터뷰를 보고 망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뛸 듯 기뻤던 그때가 생각났다. 매일 발을 동동 구르는 와중에 싸이월드 일기장에 적었다. 진짜 열심히 할 거라고 일 시작하면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우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거라고.


그렇게 만난 첫 회사 생활은 더블린에 위치한 작은 컨설팅 회사였다. 일주일에 기차와 버스로 세 도시를 오가며 일해서 늘 피곤했는데, 마음은 기뻤다.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며, 배우고 싶었는데 잘됬다고 하면서, 회사에서 오늘 받았던 피드백을 곱씹어보고 뭐 실수한 게 없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때 생긴 습관이 기차만 타면 글을 쓴다. 지나가는 풍경을 뒤로하고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글이 술술 써진다. 첫 일에서 느낀 감정과 지금만 가질 수 있는 헝그리 정신을 꼭꼭 간직하고 싶었다. 나중에 일을 하다가 권태기가 왔을 때 꺼내보고 싶어서.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고 어떻게 견뎠는지 기억하고 싶었다.


고객사 사무실도 정말 아일랜드 스러워서 살짝 찍어둠. 도시지만 도시가 아닌것 같은 창밖 풍경. 그리고 늘 붐볐던 회사 앞 카페.


그땐 헝그리 정신이 있었다. 지금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필요한 것 같고 중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아직 나는 어리니까. 아직 한창 뭔가를 할 수 있고 뭐라도 도전할 수 있는 시기라서 그렇다. 그런데 20대의 도전보다 30대의 도전이 더 어려운 것 같다. 20대는 준비에 길이 보였던 것 같다. 조금 허들이 있을지라도 극복할 방안을 찾을 수 있었고, 어려서 그런지 도와달라고 쉽게 얘기할 수도 있었고, 또 실제로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장래 희망부터 다시 생각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미 정한길을 뛰어가고 있는 30대를 상상했는데, 다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는 30대 중반, 이전의 초조함보다 조금 더 묵직하다. 지금 이렇게 적어둔 것도 나중에 보면 귀엽다고 할지 모르겠다.


싸이월드에 로그인이 안된다. 나에게도 있었던 그 시간. 뭐든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는 패기. 그때의 다짐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는데 어렵게 된 것 같다. 작별 인사를 못했는데 떠나보내는 나의 청춘이랄까나. 아쉬움은 많지만 추억에 젖어 살지 말고 다시 마드리드 우리 집의 현실로 돌아온다. 나는 아기가 둘이니까. 지금 바라보아야 할 것은 추억과 감상이 아니라 우리 아기들이니까. 자 오늘도 분유를 한번 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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