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는 한 생명의 탄생을 빛에 비유한다. Dar a luz(달 아 루즈), 직역하면 '빛을 주다'라는 뜻으로, 아이에게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다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아이를 갖기까지 불빛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던 내가 아기들을 품고 9달을 보낸 것도 기적같은데, 출산까지 잘 해내야한다. 건강한 출산을 위해 매일매일 기도 했다.
출산.
인생을 뒤바꾸는 일생일대의 날. 본능까지 누른 채 아기를 위한 삶이 시작되는 날. 인간의 수면욕이 이렇게 강렬한 것이었나 깨닫게 되는 시간이랄까. 신이와 선이, 뱃속 우리 아기들. 반짝반짝 빛이 연상되는 이름을 가진 두 아이를 태양의 나라에서 낳는 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지만 제법 잘 어울리는 듯했다.
스페인에서의 출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스파르타! 세상에 스페인 여성들은 엄청 강인한 가보다. 이곳에서는 아이를 낳자마자 적당히 스윽 스윽 닦아 품에 안겨주고 정말 D-day부터 육아가 시작된다. 눈도 못 뜨는 아기를 산모에게 주고 젖을 물리라고 하고 그렇게 함께 침상에 누워 병실로 옮겨진다. 그뿐인가 가족 중심 문화를 지닌 스페인에서는 가족 모두가 함께 출산에 참여한다. 진통 때부터 시아버지 시어머니 형제들이 달려와서 같이 기다린다는 것을 듣고 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출산의 과정은 정말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의범절이니 뭐니 생각할 틈도 없이 고통이 휘몰아치는 그 순간에 친정 시댁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있다니 진정 가족이 된다는 것은 이런 걸까. 친구들 지인들도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축하해 주는 게 이곳의 매너라니. 각 나라의 문화가 달라도 이렇게나 다르다.
"네? 쌍둥이를 자연분만하라고요?"
동네 병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당일 진료는 없다며 예약을 3주 뒤에나 잡아주었다. 3주 뒤에 만난 선생님은 고위험 산모는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해 주셨다. 아..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쌍둥이 엄마는 고위험 산모구나. 아래 있는 아기가 첫째, 위에 있는 아기가 둘째인 것도 같아서 신기했다. 스페인은 초음파나 진료도 자주 보지 않는다고 들었었는데, 나는 한국과 비슷하게 출산 전 두 달부터 매주 병원으로 출근했다. 예약이 잡히는 대로 다닌 탓에 매주 거의 다른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때마다 자연 분만을 권유받았다. 아이 위치도 좋고 산모도 건강하니까 무조건 자연 분만을 하라는 거다. 스페인어를 잘 알아들었으면 이미 설득당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강력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그놈의 나뚜랄 (Natural).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다나? 계속되는 강력 권유 탓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배는 5개월 때부터 이미 만삭인데 왜 수술 날짜를 안 잡아주는 거야! 의료진들은 내 배가 멜론처럼 매우 동그랗다고, Que grande(께 그란데: 엄~~청 크다)라고 말하면서도 수술 일정 잡기는 회피했다.
정말 배가 터져나갈 것 같던 예약일, 병원에 가서 수술 날짜를 잡아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제야 말한다. 여기는 긴급 수술이 아닌 이상 38주에 수술 날짜를 잡아준다고 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엄마 자궁에서 자라는 것이 제일 좋고 건강하다고. 38주 전에 오면 긴급 수술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드디어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마음이 놓은 것도 잠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출산 담당 의사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이곳은 담당 선생님이 아이를 받아주시는 게 아니었다. 진통이 오면 급히 병원에 가고 그날 근무하시는 선생님이 도와주시니 누가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스페인 사람들은 의료진 모두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가. 수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누가 들어오는지 모른단다. 나에겐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싶은데 의료진 선택조차 못한다니 걱정이 밀려왔다. 제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들어오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둑둑둑둑둑둑둑둑"
마음이 떨릴 때마다 진정시켜준 건 다름 아닌 우리 아기들의 심장 소리였다. 늘 걱정을 안고 살던 탓에 조그마한 태아 심음 측정기를 샀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아기들의 박동을 들을 수 있었다. 태동이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할 때면 슬며시 꺼내 들어보는 아이들의 살아 움직이는 소리. 들을 때마다 벅차다. “엄마 우리 모두 잘 있어요” 말해주는 것 같아서 한결 안심이 되었다.
38주 0일. 대망의 수술 날. 배는 텄지만 아이들은 무사히 38주까지 좁은 뱃속에서 견뎌 주었다. 대기실을 방문한 레지던트 선생님께 제왕절개 상처는 최소로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웃으며 자신 있게 “비키니 오케이!(bikini ok)”를 외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2월의 수술실은 추웠고 안정이 되질 않았다. 남편도 당장은 안되고 조금 후에야 들어올 수 있다는 말에 도저히 차분해질 수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우리가 있어요. 자 보이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아기들을 함께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든 달려와서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않아 돼요."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주시던 말. 괜찮다는 말을 듣길 수백 번. 중년의 회색빛 머리로 예상해 보건대 마취계의 마스터쯤 되실 것 같은 그분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수술실에 10명이 넘는 스텝들이 있었다. 우선 사람이 많으니 더 안심이 되었다. 이전 진료 때 본 선생님도 계셨고, 집도하시는 여선생님도 인자해 보이셨다. 정신을 차렸다. 그래 내가 엄마다. 이제 아기들을 맞이해야지.
신이와 선이는 그렇게 2분 간격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펑펑 울며 그 순간을 맞이했다. 빨갛고 작은 아기 하나가 나에게 안겼다. 신이었다. 퉁퉁 불었지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로 보였다. 신랑과 함께 아기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우리 아가” 그동안 좁은 곳에서 동생을 받치고 버텨야 했던 고마운 우리의 첫째. 인사 중에도 출산이 아직 끝나지 않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마취는 했어도 배를 누르는 그 느낌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 지나지 않아 선이가 태어났다. 온갖 인상을 쓰며 찡그려서 못생겼는데 너무 귀여운 거다.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아기들은 작았지만, 어떻게 내 배에 다 들어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길었다. 수술실이 떠나가도록 우는 두 아기는 내게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로 주었다. 늘 힘찬 심장 소리로 내 마음을 지켜주었던 작은 사람들, 내가 지켜주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축하한다는 스텝들의 말에 모두가 무사한 것 같았는데 긴장이 풀려서 그랬나 갑자기 모든 아픔이 몰려왔다. 아기를 간호사님께 건네고는 펑펑 울며 진통제를 달라고 소리쳤다.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고 아플 리가 없다고 그러시는데 아프다고 아프다고 소리 질러 결국 강력한 진통제 주머니를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잠시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 같다. 그 뒤가 조금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정신없는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기억. 그렇게 우리의 보석, 신이와 선이가 태어났다. 나의 출산은 그렇게 원했던 대로 신랑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잠시 후 회복실로 옮기고 정말 듣던 대로 D-day에 양쪽 아기들에게 젖을 물리며 나의 육아는 시작되었다.
깜깜했던 뱃속에서 보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세상의 빛을 보여줄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전형적인 스페인식 아기 선물. 순면 제품보다 니트 선물을 많이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