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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Sep 24. 2021

마드리드의 배불뚝이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배고팠던 

인생은 늘 상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해외 이사 자체가 임신 중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어설픈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마드리드의 배불뚝이 생활은 유쾌함보다는 외로움이 가득했다. 우선 남편이 너무 바쁘다. 남편이 남의 편 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이 시절의 '남'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회사여서 원망하기도 어려운 그런 날이 반복되었다. 스페인에 오면 평일 저녁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야근이 이어졌고 주말 출근을 하기도 했다. 함께 밥 먹자고 찾아오는 친구도 없고, 반찬 많이 했다고 스윽 가져다주시는 엄마도 비행기로 13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전혀 괜찮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는 늘 배가 고팠다. 입덧은 가셔서 먹을 수 있는 것이 늘어났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위를 누르는 탓에 많이 먹지는 못했고, 뒤돌아서면 다시 배가 출출해졌다. 입덧으로 한국에서 먹지 못하고 온 수많은 음식이 생각났다. 김 선생의 통통한 김밥. 아파트 상가 지하에서 먹는 튀김 푹 찍어먹는 새빨간 떡볶이. 회사 점심때 자주 사 먹었던 반포 식스의 볶음밥. 임신했다고 먹지 못했던 회덮밥과 초밥. 스페인에서는 절대로 해먹을 수도 없을 것 같은 낙곱새. 오기 전에 남이 구워주는 한우를 꼭 한번 사먹고 싶었는 데 그땐 왜 그걸 먹을 수 없었는지. 근처 식당이라고는 맥도널드 밖에 없는 마드리드 생활이 시작되었고, 배달 음식은 많아도 임산부 식단으로는 약간 불량스러운 패스트푸드 메뉴라 자제하곤 했다. 먹고 싶은데 먹지를 못하니 욕구불만이 생겨서 괜히 화가 나기도 했다. 

 

캐리어 여섯 개만 달랑 들고 온 해외 이사라 추억이 깃든 물건을 잔뜩 받을 컨테이너도 없었다. 집에 흐르는 적막을 무엇인가로 채우고 싶었는데 다행히 여섯 개의 수화물 중 하나에 제네바 스피커가 들어있었다. 스페인으로 이사 올 줄도 모르고 한국에서 샀던 신랑 생일 선물. 무겁지만 고생해서 들고 온 보람 있게 이 스피커에는 라디오 기능이 있다. TV이 없어도 이제 음악으로 태교를 할 수 있겠어! 마음에 드는 채널도 찾았다. 로스 꽈렌따 (Los Cuarenta) 사십이라는 뜻을 가진 음악 라디오가 나의 고정 채널이 되었다. 한류가 유행이라더니 종종 한국 가사가 들리기도 했다. 두아 리파와 블랙핑크가 함께 부른 노래를 들으며 둠칫둠칫 고개와 어깨를 들썩였다. 곡 자체가 신나기도 했지만 알아듣는 언어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지 처음 느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스페인어를 들으니 스페인에 온 것이 실감 났다. 그래. 이 곳에 사는데 현지 언어를 배워야지. 


라디오를 듣긴 했지만 집에 인터넷도, TV도 없어 대체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하루 24시간이 무척 길어진듯 했다. 급한 대로 한국 폰 해지를 뒤로 미루고 무제한 인터넷 로밍을 했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이 작은 기기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도 태교엔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듯싶었다.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야만 했다. 몸이 많이 무거운 터라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이왕이면 꼭 필요한 일을 해야만 하니 선택한 것은 스페인어를 배우는 일이었다. 네이버에 있는 스페인 거주 한국인 맘 카페에서 동네에 사는 스페인어 선생님을 찾을 수 있는 앱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미모의 법대생 '에바'를 처음 만났다.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에바를 만났다. 시원한 이목구비에 호리호리한 체격, 진한 갈색의 머리와 그윽한 눈동자을 지닌 이 친구, 지나가면 사람들의 눈길이 저절로 따라가는 여배우 같은 에바를 보면서 감탄한 것은 외모만이 아니었다. '아니, 이런 진국인 대학생이 다있나!' 늘 부지런한 그녀를 보며 스페인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소문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오후 5시 수업을 위해 정말 딱 2분 전 초인종을 누르며 시간 엄수하는 것. 한 시간 정말 꽉꽉 채워서 수업해주는 것. 무엇을 물어보면 종이에 깔끔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 등 밝고 씩씩하고 성실한 에바를 보니 스페인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수업 시간이 기다려졌으며, 최고의 태교 시간임에 틀림 없었다. 만날 때마다 필요한 스페인어를 하나씩 익혀갔다. 우리 아기들을 지칭할 말을 얼른 배우고 싶었기에 제일 먼저 물어본 단어는 쌍둥이였다. 쌍둥이는 보통 헤멜로스(Gemelos)라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경우에는 이란성 쌍둥이 이기에 메이쏘스(Mellizos)라고 한다고. 


"메이쏘스? 손 메이쏘스! (Son Mellizos, 얘네 쌍둥이야!)" 


쌍둥이라는 단어를 배우며 이 곳 사람들에게 우리 새 가족을 소개할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실제로 그 말을 하는 순간 사람들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너무나 행운인걸! (께 수에르떼 Que suerte!)"라고 대답해 주었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환대를 절로 느낄 수 있는 반응이었다.


에바의 수업 시간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듯 했다. 영어 유치원 대신 스페인어 유치원에 온양 역할극을 하며 새로운 언어를 배웠다. 의사 선생님은 영어를 하셔도, 초음파를 봐주시는 영상의학과 선생님이나 간호사, 사무직원은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병원에서 무조건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야 했다. 초음파는 에코 Eco, 진료는 콘술타 Consulta, 예약은 씨따 Cita, 수유는 락탄시아 Lactancia  등 필요한 단어를 하나씩 익혀 나갔다. 병원 가기 뿐만 아니라 슈퍼 가기, 은행 가기, 식당가기 상황별로 연습했고, 종종 전화로 해결해야하는 행정 처리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더듬거리는 스페인어를 들으면서도 잘한다고 북돋아 주고, 나의 안부뿐 아니라 아기들의 안부도 늘 물어주는 선생님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마드리드 토박이인 에바의 어린 시절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아기들의 앞으로의 생활도 상상해보곤 했다.  


에바 뿐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었다. 본래 북아프리카나 남미 등 여러 곳에서 이민자들이 많이 와서 사는 나라라 그런지 인종 차별도 타 서유럽 국가보다는 적은 듯했다. 특히 다정한 이웃들은 나를 이방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따스한 시선으로 눈을 맞춰주었고, 함께 출산 걱정해주었으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심지어 자주 들르던 맥도널드에서는 커다란 배를 잡고 서있는 나를 보고, 요청하지 않아도 언제나 메뉴를 자리로 가져다 주곤 했다. 임산부라서 누리는 특별한 배려 덕에 미소를 자주 짓게 되었다. 그러니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조금은 외롭기도 한 타지생활에 대한 아쉬움보다 회사를 안 가고 쉴 수 있는 것, 이렇게 남편과 함께 살며 출산을 준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임신 중기까지만 해도 몸은 괜찮았다. 쌍둥이지만 주수대로 둘이 무사히 크고 있기에 처음으로 큰 덩치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배가 불러올수록 몸에 무리가 가서 점점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 들었다. 경부 길이가 짧아지면 어쩌나 자궁문이 빨리 열려버리면 어쩌나 하는 고위험 산모의 불안. 근심 가득한 마음의 방문을 쿵하고 닫아주신 것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아이 얼른 낳으라고 압박을 주신 분이기도 했지만,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뒤도 안돌아보고 한 걸음에 달려와주신 진정한 내 편 또한 '역시 우리 엄마'였다. 출산 열흘 전 즈음, 엄마는 커다란 이민 가방과 집에 존재하는 제일 큰 캐리어를 낑낑 끌고 마드리드로 와주셨다. '엄마가 있으니 안심이야!'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나이를 서른몇 살이나 먹었어도 엄마에게 의지하고 싶은 딸의 어리광은 여전했다. 이제 아이를 낳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신이야, 선이야, 아직은 나오지 말고 다다음주 화요일에 아침에 엄마가 병원 데려가 줄게? 그때 만나자? 꼭 부탁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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