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롱 Nov 07. 2020

해외 생활에도 권태기가 찾아왔다

코로나 탓

권태기.


보고 싶지 않고 잘해보려는 의욕 조차 고갈되어버린 날이 지속되는 현상. 바로 나에게도 찾아왔다. 쌍둥이 육아 얘기냐고? 아니다. 그러기엔 육아란 너무 다이내믹하고 아기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밀당의 천재들이다.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는 걸 본인들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육아에 권태기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스페인 살이와 언어 공부 이야기다. 요즘은 뉴스조차 꼴도 보기 싫다. 코로나 때문이 시시때때로 정책이 바뀌어서 스페인어 초보인 내가 모든 뉴스를 제시간에 따라잡는 것은 꽤나 피로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정부에서 코로나 확진자 급증을 이유로 마드리스의 2주 락다운을 공표했다. 지방 분권이 활발한 곳인가 마드리드는 정부의 결정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항소를 하고 대법원이 마드리드 손을 들어주었다. 사람이 자유롭게 다닐 권리를 정부가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란다. 락다운이 공표가 됐지만 사실상 효력이 없다. 어기는 시민들에게 벌금은 물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 열 받은 정부가 이것을 가로막을 방법은 State of Alarm 비상사태를 선언하여 이동 제한을 다시 발표하는 것. 이 비상사태라는 게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아주 무거운 결정이기에 3월에도 벌써 한번 해버린 이상 과연 또 할지는 의문이었다. 결국 후다닥 발표해버리고 다음날 3시부터 다시 정부발 락다운이 시작되었다. 3일 사이에 결정이 세 번이나 바뀐 셈이다. 듣기로는 스페인 정부와 마드리드 주정부 집권 당이 달라 힘겨루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연유는 알 길이 없다. 이게 별일이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 락다운이 되면 집 건너편에 있는 가장 가까운 슈퍼를 못 간다. 길 건너가 다른 도시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도 집 앞 도보 3분 거리를 두고 차를 타고 10분을 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거다.


스페인어 공부도 자격증 위주로만 하다 보니 조금 지친 것 같다. 9월 시험 이후에 일주일 쉬고 다시 시작한 외국어 습득 일상. 시험의 다음 단계인 델레 B2는 B1보다 한참 더 어렵다고 해서 내년 초에 보려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데 영 마음이 잡히질 않는다. 시험공부는 늘 벼락치기하던 평생의 버릇이 어딜 가지 않나 보다. 이런 날은 예견되어 있었다. 혼자서 스스로 열심히 하다가도 금방 지치는 게 일상이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상황을 만들어두기. 마드리드의 어학원에 연락해서 일주일에 한 번 zoom으로 스피킹 수업을 하고 전후로 그 숙제를 하는 스케줄을 짜두었다. 한국에 계신 과외 선생님과도 일주일에 한 번 작문 숙제를 제출하고 첨삭을 받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고작 두 가지 작은 약속에도 학원 가기 싫은 사춘기 아이 같은 마음으로 숙제 때우기 식의 날이 계속되고 있다. 100프로 활용하고 도움받아도 스페인에서의 생존 언어 반도 못 미칠 실력인데 이렇게나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니. 인간의 모티베이션은 대체 어디서 끌어와야 하는 걸까.


자책하는 마음이 커질 무렵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득 조금은 코로나 탓을 해도 될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절로 몸은 움츠러들고 집에서 보내는 하루하루. 나도 모르게 지쳤나 보다. 언어를 배우면 활용할 곳이 있어야 하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긴커녕 아이들 어린이집도 보내질 못했고. 억지로라도 말하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자꾸 줄고, 일상은 점점 생각 없이 쉽게 할 수 있는 말로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다. 일상이라고 해봐야 아침에 아파트 단지 산책을 하며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하기. 아마존 택배 오면 택배 받고 고맙다고 하기 이 정도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말 잘하기란 그런 게 아닌데. 멈춰 버린 언어 습득에 아쉬움만 늘어가고 어디 마음 한구석이 꽉 막힌 느낌이다. 마드리드 안 서울 집 콕 살이는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어떻게든 마음은 고쳐먹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래. 권태기에 너무 스스로를 원망하지 말자. 시험공부를 해야만 언어가 느는 것은 아니니 좋아하는 인테리어 잡지도 한 권 보고, 구석에 박혀 먼지 쌓이던 라디오도 꺼내 두어 집안에 활력을 불어넣어줘야겠다. 좋은 날도 또 오겠지.. 

작가의 이전글 새 언니가 독일에서 담아준 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