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자취 시절 나의 하우스 메이트였던 K양은 떡볶이의 대가였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 나이에 학교 앞 분식집을 재현하는 어마어마한 내공. 종종 그녀의 방에 놀러 가면 컴퓨터로 유행하는 드라마를 틀어두고 떡볶이를 먹곤 했다. 그게 너무 맛있어서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달라고 종종 물어보곤 했는데 늘 돌아오는 대답은 매우 단순.
"별거 없어. 그냥 간장 설탕 고추장 고춧가루 물엿만 있으면 돼."
그녀에게 정확한 레시피란 건 없었다. 우리네 엄마들이 하시듯 그냥 크게 한 스푼 휘휘 젓고 모자라면 조금 더 추가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해외에서 구하는 한식 재료는 그냥 딱 나야 하는 맛이 날 정도의 기본 제품이다. 프리미엄 냉장 제품 같은 건 구할 생각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가진 건 겨우 냉동 떡과 저렴한 사각 어묵, 그리고 유통기한이 아주 긴 고추장. 아 겨우라니 해외인데, 그거라도 감사해야지 싶긴 하지만. 이상하게 초라한 재료도 그녀 손을 거치면 그 변신은 마법 수준이다. 칼칼하고 매콤한 소스가 쏙쏙 베여있는 말랑말랑한 떡과 넉넉한 어묵의 조합이란 거부할 수 없는 유혹 같은 존재랄까. 정신없이 둘이 한 냄비를 싹 비우면 우울한 날의 피로는 싹 날아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이었던 그 시절에 무슨 고민이 있을까 하지만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주부는 또 주부 나름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니까 말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뜻한 만큼 나오지 않는 성적. 초보의 어설픈 연애와 사회생활까지도 스트레스로 다가온 그때의 우리들. 힘들 때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 그건 바로 맛있는 걸 먹는 것. 떡볶이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스페인에 사는 지금도 여전히 떡볶이는 내 마음속 1,2위를 다투는 그런 존재다. K양의 비법은 끝내 알아내지 못했지만 나에겐 백 선생님의 레시피가 있다. 그러나 바뀐 게 있다면 이제 나도 좀 컸다고 한 끼 식사로 떡볶이만 먹기에는 뭔가 아쉽다. 식구도 늘었을뿐더러 요리의 내공도 조금은 쌓였으니 떡볶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준다. 그것은 바로 김밥. 그냥 먹어도 맛있고 소스에 찍어먹으면 일품요리가 되니까 딱 어울리는 메뉴. 그래서 나는 김밥을 싸기로 했다. 요리를 잘 모르는 남편은 종종 내게 손도 많이 가는 김밥을 왜 굳이 집에서 싸는지 내게 묻곤 한다.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김밥 한 줄에 10유로 내고 먹을 수는 없잖아"
여담이지만 마드리드에서 떡볶이도 김밥도 사 먹을 수 있다. 유럽의 타 주요 도시만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진 않지만 그래도 대도시라 한식당이 5개쯤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오천 원짜리 떡볶이를 2만 원, 2천 원짜리 김밥을 만원 주고 사 먹을 수 있겠는가. 두배도 아닌 몇 배인데 여간 속이 쓰린 게 아니다. 해 먹을 수 없다면 몰라도 사 먹을 수 없다로 바꿔 쓰는 편이 낫다. 양껏 시켜 먹다가는 스테이크 써는 가격이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설퍼도 집에서 있는 재료로 돌돌 말아본다. 김밥의 가장 중요한 핵심 재료인 김과 단무지만 있으면 다른 것은 자유다. 햄도 맛있고 달달 볶은 당근과 꾹 물기를 짜내고 조물조물 무친 시금치까지. 알록달록 예쁜 데다 영양도 가득한 내 사랑 김밥.
서울에서 가끔 사 먹던 '속이 밥보다 세배쯤 많아 보이는 두툼한 김밥'도 간혹 생각나지만 제일 생각나는 김밥은 엄마표 '집 김밥'. 그 김밥은 희한하게 먹고 또 먹어도 자꾸만 손이 가던 음식. 이제는 종종 싸기 시작해서 자주 만들어 먹지만 여전히 김밥을 마는 데는 소질은 없다. 그래도 한가득 썰어둔 김밥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 면 맛은 있나 보다. 삐뚤빼뚤한 이 김밥 조차 사랑받는 것은 김밥이 채워주는 고국을 향한 그리움, 집밥 느낌 덕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