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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Dec 01. 2020

아보카도, 이젠 안녕

잊지 않기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점심 메뉴는 아보카도 비빔밥이다. 잘 익어서 크리미 한 아보카도에 따끈따끈한 밥 그리고 노른자가 아직 찰랑찰랑 살아있는 계란 프라이까지. 김가루를 조금 올리고 간장과 참기름을 크게 한 바퀴 둘러주면 고소한 향기가 솔솔 난다. 간단하지만 든든하고 건강한 한 끼로 손색없고 통통한 명란젓과 나풀나풀한 잎채소까지 곁들이면 레스토랑에서 팔아도 손색없을 법한 한 그릇 메뉴. 슥슥 비비면 연둣빛이 밥에 물들고 달걀의 노란빛까지 섞이면 이게 밥인지 디저트 인지 모를 만큼 화려해 보인다.


아보카도만 보면 임신 준비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정확한 이유는 찾아보지 않았지만 아보카도가 임신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거의 매일 아보카도 주스를 마셨다. 다행히 회사 옆 건물 1층의 티 카페에서 생아보카도를 갈아 주스로 팔았다. 출근길에 나는 아메리카노를 손에 드는 대신 이걸 선택했다. 처음부터 마신 건 아니었다. 펄이 동동 들어가 있는 밀크티도 좋아하고 진한 카페 라테도 좋아하니까. 그렇지만 길어지는 난임 탓에 뭐라도 시도해보자 싶어 마시던 아보카도 주스. 사실 이게 맛있지는 않다. 처음에는 시럽 맛으로 먹었는데, 계속되는 치료로 호르몬의 영향인지 자꾸 살이 쪄서 나중엔 시럽 없이도 익숙하게 한잔을 비워냈다. 우유에 간 아보카도는 속이 든든했고 점심시간까지 든든히 나를 채워 주었다.


임신에 좋다는 건 뭐든 시도해본 것 같다. 한의원이고 난임 병원이고 식단이나 영양제 먹기. 아 운동은 마음은 먹었는데 의지가 부족해서 늘 하다 그만 두길 반복했던 것 같다. 남들은 쉽게 쉽게 잘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나와 함께 일하던 선배들이 하나 둘 출산 휴가를 떠나는 게 흔한 일상이어서 준비가 지치기도 했는데 그래도 우리가 선택한 건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이 되고 싶다는 것.


경주에 아이가 잘 들어서는 한약을 지어주는 한의원이 있단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는 신랑 선배 부부도 이곳에서 한약을 한재 달여먹고선 첫째도, 둘째도 낳았다고 하니 우리도 한번 가보기로 했다. 단잠이 소중한 주말이지만 우리 선택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 졸린 눈을 비비고 겨우 일어나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했다. 일찍 가서 줄을 서고 번호표를 받아야 제일 잘하시는 할아버지 선생님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나. 그렇게 도착한 한의원에는 벌써 긴 줄이 있었다. 난임이 우리만의 일은 아니구나 싶어 씁쓸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약을 짓고 오는 길. 주중이고 주말이고 일에 치여 살던 때라 일박은커녕 식사도 한 끼 안 하고 그 먼길을 다녀온 게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미련하다. 귀갓길에 고속도로에서 가락국수와 핫바를 사 먹으며 했던 말.


"우리도 언젠간 생기겠지?"


그때는 이렇게 임신을 준비한다는 사실도 부끄러워서 숨기고 살았다. 시험관 시술 후 복수가 차서 진짜 아팠던 날조차 새벽에 병원으로 달려가 1번 환자로 링거 맞고 출근했다. 점심시간에도 속이 좋지 않다고 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 기억. 밤에 똑바로 누우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벽에 기대어 겨우 잠드는 일도 있었지만 일이 없지 않은 이상 회사에는 꾸역꾸역 나갔다. 어쨌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는 안 줘야 하니.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미련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상태로 일을 얼마나 잘할 수 있었겠나 싶어서. 그래도 언제나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요즘 아이가 쉽게 잠들지 못한다. 아이도 새로운 변화가 버겁다. 최근에는 침대도 큰 것으로 바꾸어 주었고, 아이가 가장 사랑하던 젖병도 끊었다. 한 아이가 힘들어하니 다른 아이의 잠도 깨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엄마를 찾고 근처에 보이는 전등 스위치는 모두 켜버린다. 육아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느낀 것도 잠시 또다시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다. 아이도 밤새 잠을 푹 자지 못해 짜증이 많아지고, 나도 아기들이 신생아 때처럼 예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참고 다독이며 아이를 대해야 하는 건 오랜 시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린 아이들이니까 말이다. 아기는 예쁘고, 그렇게 귀여운 아기가 둘인 쌍둥이는 오죽 사랑스러울까만 육아는 늘 밖에서 보이지 않는 애로사항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육아의 마음고생이 난임의 마음고생을 넘어서지 않는다. 기적적으로 찾아온 우리 집 쌍둥이는 내가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아이 둘의 엄마지만 가끔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는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전의 마음고생을 되새기고 오늘도 각오를 다져본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게다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런 건 쉬쉬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아프면 치료받으면 된다. 그래서 더더욱 어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나.


오늘도 아기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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