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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Sep 28. 2021

나처럼 마음 졸이고 있을 누군가에게

드디어 졸업

3-4-3열의 비행기 안 가운데 줄에 네가족이 쪼르르 나란히 앉았다. 나, 신이, 선이 그리고 남편. 아이들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타는 고국행 비행기. 드디어 3년만에 한국의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는 것도 잠시, 행여 울지 않을까? 불편해하진 않을까?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12시간의 비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맞추어 밤 비행기를 탔다. 미리 준비한 막대사탕을 쥐어주고 이륙을 기다린다. 깨물어먹지 말고 날름날름 빨아 먹어, 신발은 미리 벗어, 후디는 입고 있자 잔소리를 백만개 하면서 말이다. 자리는 좁지만 가족이 이렇게 다같이 앉아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처음인 만큼 기념 셀카도 한 장 찍어본다. 미리 주문한 아이들의 기내식도 나왔다. 비행기가 그려진 귀여운 상자에 햄버거도 있고 감자튀김도 있고, 쿠키도 있고, 요거트도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로 가득채워져 있으니 함박 웃음을 짓는 3세 쌍둥이.


캐리어를 발 앞에 두고 아빠가 양보한 담요까지 도톰하게 올려 아이들은 잠을 청했다. 어두워진 기내에 무서워하진 않을까 수유등도 꺼냈다. 좁은 것에 상관 없이 금새 잠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은 다름 아닌 아이들의 자는 모습이 아닐까! 지난 비행에서는 둘다 내 뱃속에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큰거지? 좌석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은 신이와 선이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아이들을 우리 품에 안기까지 걸린 3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이미 그 시간의 슬픔은 대부분 머리에서 사라지고 육아의 행복과 고단함이 뒤엉켜 대신 자리하고 있다. 아기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엄마 아빠에게 기대어 새근새근 잘도 잔다. 나도 신랑도 조금이나마 쪽잠을 청해본다. 머리를 대면 곧바로 잠이드는 신랑과 달리 나는 불편한 자세 탓에 뒤척뒤척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다리 쭉 뻗고 대자로 누워서 자고 싶어! '


갑자기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났다. 난자 체취 이후에도 늘 같은 생각을 했었지. 체취를 하고 나면 생리통보다5배정도 배가 심하게 아팠고 진통제를 한줌 털어넣어 먹고 억지로 잠을 청하곤 했다. 아이를 기다리던 고통스러운 밤. 다리를 쭉 뻗지 못하고 웅쿠려 자던 밤이 수일 있었다.


그 시절의 절박함을 잊고 살때가 태반이다. 아이를 원했던 간절한 마음은 어느새 육아의 고단함에 가려 마음 한쪽 구석에 조용히 찌그러져 있다.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육아를 할 거라던 다짐, 건강하게 아이가 태어난다면 다른 것은 바라지 않겠다는 기도는 과거의 일화로 남아 있다. 욕심이 자라서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도 많아지고, 싫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쌍둥이 육아는 과거를 잊고 현재에 몰두하게 할 만큼 압도적인 걸까 혹은 에너지가 부족해서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진이 다 빠져버리고 기억력 조차 감퇴해버리는 걸까.


그렇게 잊고 살지만, 종종 그 시절의 절실함이 생각날 땐 가슴 시리게 아팠던 그날의 기록을 더듬어 찾는다. 그리고 금세 깨닫는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라고! 흔히 난임 기간을 출구 없는 터널이라고 부른다. 정말 그랬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속에 있는 것 같았다. 가기 싫은 병원을 꾸역꾸역 다니던 그 시기. 난임 소식을 부끄러워했고 누구에게도 알리기 싫어 약 먹는 것도, 사무실 화장실에서 몰래 자가주사를 놓는 것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이 낫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손을 내밀어주고 싶다. 그때 용기 내길 잘 했다고, 포기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잘했다고, 무서운 마음 꾹 참고 병원에 다닌 것도 잘했다고, 무너지지 않아서 잘했다고, 이겨내서 잘했다고.    


귀여운 아기 둘이 옆에 나란히 앉아있는 지금, 그때 그렇게 불행했어야만 했을까? 되묻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라기 보다 안타까워서 그렇다. 꽃피는 30대의 시기에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일상을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서. 듣기 싫은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 휙 뒤돌아서서 종종 걸음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남들의 가십거리가 되진 않을까를 더 걱정했던 어린 나에게 난임은 죄가 아니라고 꼭 알려주고 싶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도 닦아주고 몸이 너무 힘들땐 임신 시도를 한두달 쉬어도 된다고 말해줄거다.  


아주아주 사적인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 희망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그것이 아이를 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지만 이런 해피 엔딩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나처럼 마음 졸이고 있을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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