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살이 아쉬움을 달래줄 확실한 메뉴
유럽의 겨울은 으슬으슬 하지만 스페인은 예외로 본다.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유럽에서 좀 여유가 생기면 스페인 해변가에 집을 사서 시간 날 때마다 온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햇살이 강렬하고 겨울에도 푸르른 하늘을 볼 수 있다! 남부 일부 지역, 혹은 테네리페나 마요르카 같은 섬에서는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기도 한다니. 날씨로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스페인이라고 다 같은 스페인은 아니다. 마드리드는 조금 예외라고 하자. 서울만큼 춥지 않지만 마드리드의 겨울도 코트, 가끔은 패딩을 입어야 하는 날씨. 사계절을 더 잘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스페인 다른 도시에 사시는 한국 분들이 마드리드에는 먹을 것도 많고 구경할 것도 많아 좋겠다며 하시는 말.
"마드리드에는 없는 게 없네요!"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마드리드에 없어서 엄청나게 슬픈 게 있지. 바로 바다!!! 에메랄드빛 지중해를 코앞에 두고 사시는 분들이 부럽다. 해변가 치링기또 (Quiringuito: 스페인어로 바닷가에 위치한 숯불구이 전문 식당을 말한다)에 앉아 불향이 가득한 탱글탱글 싱싱한 해산물을 먹으며 노을 지는 바닷가를 구경하고 한껏 수다를 떨고 와인을 한잔하는 그런 광경 말이다. 해산물을 좋아해서 그런가 바다에 오래 못 가봐서 그런가 날씨 얘기를 하다 여기까지 와버렸다.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세 번째 맞이하는 마드리드의 겨울은 상당히 꿉꿉하고 음침하다. 비도 자주 오고 눈도 많이 왔다. 50년 만의 대폭설이라던가. 이런 날씨에 생각나는 메뉴 하면 바로 짬뽕.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국물을 먼저 한 모금. 그리고 해물이 무조건 있어야 한다. 하나하나 커다란 해물, 국물이 속속 베여있는 야채, 후후 물어가며 면치기도 해야 하고 칼칼한 국물을 마저 들이켜면 끝!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방법이다.
사실 즐겨먹던 메뉴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중국집에 가면 나는 탕수육, 유린기, 깐풍기 등 고기에만 관심이 있었지 짜장면이나 짬뽕은 그냥 있으니 먹는 밥 같은 정도라 찾아먹는 특식 축에 끼지 못했던 셈인데. 이상하게 올해 겨울은 자꾸만 짬뽕이 생각난다. 한국에 한번 다녀왔더라면 대기업에서 만든 짬뽕 국물 조미료를 잔뜩 사 왔을 텐데, 벌써 가지 못한 지 오래니 그런 건 없다. 오늘의 주재료는 짬뽕이 아니라 라면이다. 라면이라고 무시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 아주 여러 번 해 먹었더니 이젠 조금 노하우도 생겼고 손님께 대접해도 부끄럽지 않은 맛 보장 10분 요리가 되었다. 이제 한국에 가도 찾아 먹어야 할 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뭔가 혼자만 알기 아까워서 이곳에 남겨둔다. 준비물 주요 포인트 세가지만!!!!! 이 것만 지키면 꼭 짬뽕이 아니라 외국 아시아 마트에서 가장 흔히 파는 라면, 아마존에서 파는 신라면도 짬뽕 맛이 난다. 준비 순서에 따라 나열했다.
0. 전기 포트에 뜨거운 물 준비
이건 준비 축에도 못 끼지만 조리상 필요하므로 추가.
1. 단품의 냉동 해물
해물 믹스가 더 편리하겠지만, 그것보다 하나하나 단품을 구비해두는 것이 좋다. 주로 쓰는 것은 커다란 새우(스페인어로 감바스 Gambas)와 꼴뚜기(치피로네스 Chipirone) 해물 하나하나가 작으면 조리가 길어질수록 나중에 해물이 너무 작아져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아 그리고 예쁘라고 맛살도 넣어준다.
2. 짬뽕 맛을 내주는 야채
짬뽕과 어울리는 야채를 선택해야 한다. 파, 양파, 배추, 당근, 주키니 호박 등. 이때 배추 호박은 끓여도 덜 무를 수 있도록 결대로 길쭉길쭉하게 썰어 준다. 호박은 안에 심은 잘라두고 다른 요리에 쓰는 것이 좋겠다.
3. 파 + 고추기름
집에 당연히 고추기름은 없다. 그렇지만 고춧가루 조금은 늘 집에 있는 재료 아닌가. 기름을 5 숟갈쯤 넉넉히 두르고 약한 불에 파 지글지글, 고추 가루 타지 않게 지글지글 끓여준다. 금세 홈메이드 고추기름 완성!
1번은 찬물에 해동해야 하므로 1번으로 두었다. 3번 기름이 완성되는 순간 불을 끄지 않고 확 강불로 올려 2번의 야채를 함께 볶아 주면 벌써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때 라면 수프도 같이 넣어서 볶아준다. 라면 개수에 맞춰 뜨거운 물을 부어주고 라면 면을 투하, 그리고 1분 후에 해동한 해물도 넣어주면 향긋한 요리 완성이다.
지금 당장 먹고 싶은데 짬뽕을 사 먹기 힘든 분께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소울 푸드, 먹으면 힘나는 음식일 테니 말이다. 나에게 이 메뉴는 겨울의 손난로 같은 존재. 온몸에 온기를 전달해주는 대표 음식이다. 우선 호호 불어 먹으며 겨울을 무사히 지내고 여름이 오면 간절히 바라는 대로 스페인 저 남쪽 해변 마을 치링기또에 가서 먹고 싶었던 숯불 해물 구이를 잔뜩 먹어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