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SNS 친구의 계정에 눈길을 끄는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오랜만에 뵙는 친구의 어머님, 자취 시절 친구 어머님네 반찬도 많이 얻어먹었던 터라 더 반가운 마음. 엄마와 딸의 다정한 데이트 사진은 아니고 소파에 누워서 쉬고 계시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익숙한 친구네 부모님 댁 배경이 아닌 것 같은데 역시나, 어머님의 어머님, 친구의 외할머니댁에서 한숨 돌리고 계신다고. 괜히 우리 엄마가 떠오르던 자연스러운 사진. "엄마도 엄마 친정 와서 쉬는 중"이라는 이 사진 하나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내가 엄마가 되었으니 하는 공감 아닐까 생각하면서.
한국에 못 간지 2년이 넘었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을 줄은 몰랐는 데 나도 우리 엄마 보고 싶다. 다행히 영상통화는 자주 하지만 그게 어디 만남의 기쁨을 대신할 수 있을까. 엄마의 포근한 품, 엄마 냄새, 엄마가 해주시는 엄마 밥까지. 투덜투덜 상냥하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가슴 아리게 죄송할 만큼 자식을 기르는 입장이 되어보니 엄마가 더 그리워진다. 몸이 고단한 일상에서 정말로 마음 편안한 곳은 어딜까 생각해본다. 눈치 보지 않고 거실 소파에 누워 있을 수 있고 쌓여있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고, 아이들도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곳. 바로 부모님 댁. 엄마 아빠가 계신 집. 사진을 보며 느낀 건 나이가 들어도 그건 같지 않을까 하는 거다. 점점 돌봄을 받는 입장이 뒤바뀌는 것이 사실일지 언정 사랑의 크기만큼은 부모님을 못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차이가 엄마 집을 사전적인 의미에서 무엇인가로 한층 더 탈바꿈하는 것 같다.
사실 아직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다녀오질 못했다. 나도 부모님도 아이들도 모두가 원하는 만남이지만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다녀오기에 아직 전쟁이 끝나질 않아서. 게다가 24개월 미만에 아기는 한 명당 한 명의 성인이 동반해야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고 남편 스케줄상 자가 격리까지 하고 한국에 다녀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현실적인 고민이다. 예약해둔 비행기표는 취소가 되었다. 무사히 환불까지 받았는데 그 기쁨보다 직항이 없어진 슬픔이 더욱 크기도 하다. (현재 기준으로 인천-마드리드 직항은 비운항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기르다 보니 집이 일터가 되어 버렸다. 숨 쉴 구멍이 사라져 버렸다. 나름 최대한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끝까지 안방만큼은 휴식 공간으로 사수하고자 했지만 아이들이 커가고 문을 자유롭게 열게 되면서 이 작은 방 마저 없어져버렸다. 이런 때 엄마 근처에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본다.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게 일상인 것이 순리인 것 같기도 하지만 숨이 턱턱 막히고 뭔가 괴로운 때 조금 있다가 들러도 될까요 하며 슬쩍 가는 것 말이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우리 막내 힘들지 하며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 중 제일 맛있는 걸 내어주실 텐데. 뭘 바깥 밥을 시켜먹냐며 뚝딱뚝딱 맛있는 한 끼를 기꺼이 내어주실 텐데.
누구에게나 "숨 쉴 구멍"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거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건 따뜻한 우리 집이 될 수도 있고, 그리워하는 친정이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나 영화 또는 여행, 퇴근 시간 만나는 친구들과의 우정이 될 수도 있겠다. 소소해도 상관없지만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 평화로운 일상에는 그런 게 없을지는 모르지만 요즘따라 유독 찾아오는 감정.
"울컥" 혹은 "버럭"
나도 모르는 새 욱하며 뜨겁게 올라오는 꿀렁꿀렁한 용암 같은 화를 조금이라도 달래 보기 위해 숨 쉴 여유를 찾아봐야겠다. 우선은 그렇게 버텨보는 거다. 그리고 곧 한국 가서 엄마를 만나면 꼭. 지금 느낀 이 감정을 말로 전해드리고 싶다.